공무원들의 철밥통 신화가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라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공직자들의 바른 자세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혈세를 먹고 있는 공직자들이 부정과 비리에 야합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때문에 바른말을 할수 있는 공직자들이 많아야 밝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직언하는 공직자를 도외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바른 사회를 무너뜨리는 악습이다. 다수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다수가 잘못됐다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공직자의 판단이 국민 개인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를 서술한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직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기원전 99년 중국의 한나라 한무제 시절 때 이야기다.

  당시 전략과 용병술에 밝았던 두릉 장군은 한 무제의 명을 받아 단 5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방의 흉노 토 벌에 나선다.

  두릉 장군은 많은 적을 물리치며 잘 싸웠으나 말에서 떨어져 적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두릉 장군은 전사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고 이듬해 전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군의 중신으로 쓰이고 있다는 소문이 떴다.

  중신들은 앞다투어 두릉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집불통에다 부하의 의견에 평소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무제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신하들이었다. 모든 신하들이 후세에 교훈을 삼기 위해 멸족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때 말석 신하로 있던 사마천이 감히 머리를 조아리며 직언에 나선 것이다. ‘폐하, 두릉 장군은 전투에 나간 지 반년 밖에 되지 않은 데다 전도가 유망한 장군이라고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라며 그를 역적으로 모 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직언한 것이다.

  적진에 살아 남은 이유를 충분히 확인한 후에 처벌할 것을 직언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황제의 기분 을 거스른 죄와 간신배들의 입질에 몰려 사형은 면했으나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게 된다.

  황제 앞에서의 소신 있는 직언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다. 주변에선 사마천에게 치욕적으로 목숨을 연연하며 사느니 독약으로 자결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같은 사실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목숨을 부지했고 사기(史記)를 완성 했던 것이다.

  사마천의 이 같은 일화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상사들에게 직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역사적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공직사회 일부는 아첨과 줄 서기에 여념(餘念)하고 있다. 직언은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생명줄이자 공직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바로메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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