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에 이름이 자주 올라 널리 알려져 있는 정계나 재계, 관계 할 것 없이 출세 가도에 있는 유명 인사들이 형사 처분을 받고 감옥에 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출세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룩한 출세이거늘 그 영광의 자리에 올라 처음의 결심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바지 해 보겠다는 그 의지는 미쳐 펴보지도 못한 채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가니 말이다.
그래도 끝까지 체면은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인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억울하다.’, ‘대가성은 없었다.’, ‘검찰에 가서 다 말하겠다.’, ‘선의로 주었다.’ 등의 나름대로 당당하게 결백함을 주장했지만, 검찰에 가서 신문을 받고 나오는 모습은 처음과 달리 왜 그리 초췌하고 풀이 죽고 말이 없는가. 그리고는 이내 호화로운 집무실을, 저택을 뒤로 하고 썰렁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출셋길에서 감옥의 길로 가는 데는 반듯이 금품이라는 요물이 작용하는 것이다. 바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이는 어르신과 소생만의 일이요 무덤까지 안고 가는 비밀입니다”라고 철통같이 약속을 했건만, 무덤까지는커녕 감옥도 가기 전에 터지고 만다. 그래서 요물은 항상 조심해야 할 물건이라고 옛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았던가. 요물이란? 본래 요사스럽고 간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정당하지 않은 곳에 개입하게 마련이다. 이 모두가 정도를 벗어나 외도를 통해서 남보다 앞서 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조선시대 세종조의 정승을 지낸 아산출신 맹사성은 황희, 박수량과 함께 조선왕조 3대 청백리 중의 한 사람이다. 하루는 그의 집에 어떤 대감이 찾아 왔다. 마침 비가 쏟아지는 중이라 방안에는 여기 저기 비가 새서 비가 새는 데마다 그릇을 가져다 놓기 바빴다. 대감은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아 목이 메어 말을 못 잇다가 “대감께서 어찌 이런 비새는 집에서 사십니까?”라고 하니 “허허, 그런 말 마오, 이런 집도 없는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그런 백성 생각하면 벼슬아치로서 부끄럽소. 나야 그에 비하면 녹미(나라에서 주는 양곡, 요즘 월급)를 받고 사니 이만하면 호강이 아니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법조삼성(法曺三聖)으로 일컫는 김병로 대법원장은 무가구와 흰 두루마기로, 김중섭 서울 고법원장은 염색 작업복과 검정 고무신으로, 최대교 서울고검장은 관용차 거부와 도보로, 세 분 다 같이 평생을 청렴과 청빈으로 살았다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 와서는 이런 청백리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있기는 하나 아직은 실존 인물이기에 후세에나 가서 알려질 것인가.
공직자라고 해서 꼭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직급을 배경으로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 특혜 알선 등 부정 비리를 저질러 축재를 하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또 한 몫을 하는 게 이른 바 혈연, 학연, 지연이라고 하는 3연이 있다. 이 인연의 고리를 걸고 상부상조하며 조직화해서 세력을 구축하고 비리와 부정의 온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이제 우리 사회에 흔히 있는 일로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여기며 냉소적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부정과 비리는 있다.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의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든 나라요. 국민 1인당 GDP가 2만 불에 인구가 5천만 명이 되어 ‘20-50클럽’에 가입된 엄연한 선진국이다. 이 선진국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언제까지 보여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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