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고 조선 왕조를 설계한 고려 말과 조선초 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정도전.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정도전은 조선왕조와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써 정도전의 민생개혁과 종교개혁, 군사 개혁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이루어낸 그의 업적은 실로 그가 역사상 가장 높이 평가받는 정치가가 된 주된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삼봉 정도전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평택에 있다. 조선 건국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 삼봉(三峰) 정도전 기념관

  이곳은 평택의 진위면 은산리에 위치한 삼봉 정도전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 정도전은 원래 봉화 출신이지만 정도전의 후손들의 집성촌인 이곳에 정도전 기념관이 만들어지게 됐다. 국비 10억 원을 들여 지은 전통한옥 건물로 2004년도에 개관한 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좁은 마을 길을 지나 마을 한가운데쯤으로 진입하면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삼봉집 목판’. 가장 오른 편에 보이는 정도전 기념관에는 경기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봉집 목판과 시문, 문집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삼봉집 목판은 정도전의 저서를 총망라한 것으로 정조 15년 (1791년)에 보완, 편찬됐다. 정도전의 학문과 정치적 업적을 높이 평가한 정조의 지시로 경상도 관찰사 정대용이 판각본으로 간행했다. 목판은 당시 총 258판을 제작 했고 1988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132호로 지정됐다.

  그 가운데 5~6권은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한 ‘경제문감’, 7~8권은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모체가 된 ‘조선경국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봉집 목판은 쉽게 무르지 않는 배나무로 제작했고 두께는 3.6cm로 앞, 뒤 총 4페이지를 찍어낼 수 있다.

  정교하고 세밀한 이 목판은 인쇄문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도전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현재의 기술로 재현해 낸다면 목판 한판 당 4~5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258판 전부를 재현해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사람이 아닌 기계의 손을 빌려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인력을 현재의 기술이 따라 가지 못한다는 반증일 듯싶다.

  이밖에도 기념관 안에는 삼봉 선생의 연보와 영정(현대에 그려짐), 친필로 쓴 사물잠 병풍, 고종이 삼봉 선생을 복훈하며 내린 교지 등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평택시향토유적 제2호

  기념관을 나오면 오른편에는 현재 재실(齋室)로 사용하고 있는 깔끔한 한옥건물의 민본재가 있다. 단청이 되지 않아 수수하고 정갈해 보인다. 현판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썼다고 한다. 민본재를 지나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문헌사(정도전 사당)이고 그 밑에는 정도전의 장자인 정진 선생의 사당인 희절사가 자리하고 있다.

  문헌사는 정도전의 위패를 봉안한 부조묘(不祧廟)로 현재 평택시 향토문화유적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헌사와 희절사는 제사 때(매년 음력 9월 9일)가 아니면 열어놓지 않지만 단체 관람객이 있을 때는 요청하면 열어준다고 한다.

  기념관 위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면 언덕에 작은 묘가 하나 보이는데 정도전의 묘라 한다. 실제로 정도전의 묘는 없지만 유물들만 추려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념관의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던 이용중 문화해설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삼봉은 마키아벨리와도 견줄 수 있는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앞선 뛰어난 사상가였다”

  천재적인 두뇌와 넓고도 깊은 학식을 지녔으며 ‘살아서 6년, 죽어서 600년 조선을 통치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던 정도전. 나주에서의 유배생활 당시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을 가까이에서 체험한 후 실제로 백성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이 당시에도 지금에도 이루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의 민 생주의 사상에 입각한 정치적, 경제적 개혁은 지금의 정치가들이 본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업적이 아닐까?

 

 
 
● 우리 고장, 우리 문화재

  문화 콘텐츠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정도전’ 드라마의 종영 직후 하루 평균 200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가기도 했다고... 서울과 영주, 가까이에서는 수원과 천안에서도, 더 멀리서는 제주도에서도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정작 평택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곳을 타지 사람들은 물어물어 찾아오는 것이다. 7년째 이곳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용중 해설가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타지 사람들인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개관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의 위치를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요. 이곳을 찾는 관람객 중에는 선생님들이 많은데 어른들보다는 어린 학생들 이 많이 찾아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마련돼 있지 않으니까 안타까울 뿐이죠”

  아직 홍보도 부족하고 교육관 및 체험관 등 아이들이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미비한 탓도 있겠다. 들어서는 초입길부터 좁다란 마을길에 이정표는 온데간데없어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버린 입구의 쓰레기들은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문화재라는 것이 익숙지 않음. 문화재는 귀찮은 존재라는 인식을 벗고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시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준다면 평택시도 정도전과 같은 민생주의 정치를 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방문에는 더 많은 평택시민들이 북적이는 이곳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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