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라는 얘기는 자주 들어왔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농촌에는 갈수록 인구가 줄어 노인들만 남아 농토를 지키며 살아가는 현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충주시에 어느 작은 농촌 마을에서 20년 만에 태어난 아기 돌 잔치를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음식을 마련하고 함께 기뻐하며 마을 잔치로 벌이고 있는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또 어느 초등학교 학급에서 동생이 없는 학생을 손들게 해봤더니 절반이 넘었다 한다. 이 얘기는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의 반 이상이 형제자매가 없는 외톨이라는 뜻 이다.
근래에 와서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도 점점 늦어지고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는다 해도 하나만 낳고 마는게 현실 화되었다. 이렇게 가다 보면 머잖아 가족관계에서 2촌(형제), 3 촌, 4촌이 없어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신문 기사에서 본 바로는, 2010년 서울의 30대 기혼 여성이 아이를 안 낳거나 하나만 낳은 경우가 전체의 49.4%로, 1990년의 22.3%에 비해 20년 사이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30대 기혼여성들의 자녀 수도 1990년 1.94명, 2000년 1.65명, 2010년 1.4명으로 점점 떨어졌다. 이는 둘째나 셋째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설명을 가능케 해 준다.
전국의 30대 기혼 여성의 경우에도 평균 출생아 수가 1.6명에 그쳐 20년 2.1명보다 크게 떨진 것이다. 더욱 두드러진 것은 고학력과 취업 여성이 아이를 아들이고 딸이고 하나만 낳고 단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점점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 여성이 사회 활동이 늘어 가면서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미혼도 늘어난다는 점과 직장 일로 해서 육아가 어렵다는 점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과다한 교육비 부담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시절,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불 출산이 천륜을 어긴다는 죄책감이 가슴 깊이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도 있었고 지금처럼 불임, 피임을 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이 미흡했던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으면서도 우리 역사상에 국가 정책으로 산아 제한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은 6.25 전쟁 직후 몇 년간 급격히 출산율이 높아져 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는 전쟁하는 동안 많은 인구가 희생되어 감소된 인구를 증가시켜야 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생겨 조기 결혼이 성행했고, 따라서 출산율도 높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 1955년 에서 1962~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을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한다. 그 결과 인구는 급격히 불어 나고 나라의 경제사정은 열악하여 이제는 다시 인구 감축이 시 급하여 드디어 산아제한 정책을 세워 적극적으로 가족계획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이 계획을 추 진한 1960~70년대에는 가족계획 전담 요원, 공무원들까지 나서 가정 방문 지도를 하며 둘만 낳기를 적극 홍보하다가 1980 년대에 들어서는 하나 낳기 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 만을 선호하여 남녀 성비에서 남아가 높아지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와 포스터가 곳곳에 붙여졌고 남아 선호 의식을 불식시키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지금은 출산 억제 정책을 쓰지 않아도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들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다 보니 다시 또 출산율 높이기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가 감소해 가는 데다 고령인구는 늘어가고 젊은 인구층은 점점 줄어져 장래 국가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앞에 밝힌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에서와 같이 지금의 사회구조나 젊은 이들의 의식이 출산율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