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하고자 함은 사람의 욕망 중에 하나다. 옛날 왕조 시대 에는 반상 제도가 있어서 철저한 계급사회였기에 지배계층인 양반 가문에서만 과거 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러나 피 지배계층인 상인들은 아무리 두뇌가 우수해도 과거에 응시할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한편, 양반들은 높은 벼슬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뿐아니라 그 권위로 상인들을 천대했다. 더구나 최하 위 계층인 노비는 오로지 주인의 소유물로서 온갖 힘들고 궂은 일과 시중을 들 뿐 아니라 매매 양도까지 당하며 살았던 터라 그 억울함과 분함과 한은 골수에 사무쳤을 것이다. 이제 그랬던 시절은 멀리가고 평등 사회가 된 지금에는 누구에게도 벼슬길에 나갈 기회가 부여 되었기에 높은 관직에 오르려는 욕망은 더한 것 아닌가 한다.

다만 개인에 따라서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 환경 여건이 따르지 못해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할 뿐이다. 지금 우리의 높은 교육열도 결국은 벼슬길에 또는 남보다 우위에 자리에 나가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래서 명문대를 가고자 재수 삼수를 하는 수험생, 각종 국가 고시와 대기업 입사를 위해 몰두하는 준비생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거기다 시장·군수·도 지사·광역시장·시의원·도의 원에 출마자도 경합을 이룬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시험의 나라, 선거의 나라가 아닌가를 착각할 정도다. 시골 마을 어귀에도 이장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나 붙고, 각 고등학교 교문에는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합격자 명단의 현수막이 도배하듯 걸려 있다. 각 학원 벽면에도 그 학원 수강 생들의 대학 합격자 명단 현수막을 자랑스럽게 걸어 놓았다. 또 같은 아파트 단지나 마을주민 중 자녀가 사법고시에, 행정고시에, 변리사에, 세무사에 합격되었음 을, 군 장성에 승진하였음을 축하 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도 흔히 본다.

누구나 다 원하는 것, 그러나 아무나 다 되될수없는 쉽지 않은 일을 이룩한 것이기에 축하 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상호 간에 부르는 호칭도 격상되었음을 본다. 무어라 딱히 부르기가 애매할 때는 보통 사장님이라 하고, 흘러 간 시절에 가졌던 관직명도 그대로 불러준다. 선생이라는 호칭도 웬만하면 쉽게 붙여 준다. 식당에 가면 여 종업원들에게도 이모, 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웬만큼 나이 든 분에게는 다 어르신이라 부른다. 그동안 흔히 사용하던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가씨, 총각 등의 정겨운 우리 본래의 호칭은 격하되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차별의식을 불식하려는 데서 우러난 것이기에 매우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장(長)의 호칭이 붙는데도 학교 동창이나 부락 사 람들이 단순 친목을 목적으로 모인 친목회 모임의 회장이나 총무는 서로 하지 않으려 한다. 장은 장이로되 실리와 권력이 없어서 인가.

올해는 6.4지방 선거가 있는 해이다. 벌써부터 벼슬길에 나설 후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능력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벼슬의 길은 열린다. 다만, 어려운 시험의 관문을 거쳐야 하거나 민심을 얻어야 하고 꽤 많은 비용도 들어야 하는 선거를 거쳐 당선 되어야 하니 벼슬길은 고행의 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쉽게 되는 낙하산 벼슬이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계층 간 의 차별 없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 마당에 낙하산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어쨌든 벼슬에 대한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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