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겨울을 맞이한다는 입동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 든 11월, 집집마다 김장이 한창이다. 김장은 긴긴 겨울을 나는 동안 없어서는 안 될 우리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특등 부식이다. 김장의 주재료인 배추가 올해는 너무 잘되어서 값이 싸다 보니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놓이지만, 배추를 가꾼 농민의 입장에서는 생산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추 값에 실의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해에는 배추가 대 흉작이라 한 포기에 3천 원, 4천 원 하기도 했었지만, 올 해는 1천 원 미만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인가 배추 농가를 돕기도 하고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을 위한 김장 축제 행사도 곳곳 에서 벌이는 훈훈한 김장철을 보낸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인 김치는 그 종류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김장 김치가 김치의 대명사요, 으뜸이다. 배추는 다섯 번을 죽어야 비로소 제 맛을 낸다는 속설이 있다. 그 첫 번의 죽음은 밭에서 뽑힐 때이고, 두 번째는 칼로 쪼갤 때이고, 세 번째는 소금에 절일 때 이고, 네 번째는 매운 양념과 짠 젓갈로 버무릴 때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의 죽음은 사람의 입안에서 씹힐 때라 한다.

김치의 맛은 본체인 절인 배춧 잎 여러 겹속에 넣는 속 양념재료가 좌우한다. 속 양념재료로는 무채에 고춧가루와 갈고 썬 마늘, 생강, 파, 갓과 생굴, 젓갈 등을 적절 한 분량으로 섞어 버무려서 만든다. 이렇게 만든 속을 절인 배추속 대에 골고루 넣고 맨 겉잎으로 둘러싸서 김치 통이나 김장독에 차곡차곡 넣음으로써 일단 담그기를 끝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김칫 독을 땅속에 묻고 담아 넣었으나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나와서 한결 편리해졌다. 이와 같이 김장김치를 담그기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치는 기계화 과정으로 담그기가 불가능한게 또한 특징이다. 배추를 쪼개고 씻는 과정은 기계가 할 수 있으나 나머지 과정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그러기에 김장을 할 때는 품앗이로 이웃끼리 모여서 하거나 나가사는 가족 들이 다 한 자리에 모여서 하기도 한다. 주로 여자들이 하기에 김장 날은 아낙들의 노고요, 잔칫날 같다. 김장하는 날에는 노랗고 고소 한 배추 속잎에 버무린 무채 양념을 싸서 먹는 (속대쌈) 맛도 일미다. 김장을 하느라 배추를 절이고 씻고 속을 버무리고 넣고 하는 긴 시간에 싸인 피로를 풀기 위해 음식도 준비한다.

피로한 육체에 좋은 음식은 비타민 B1이 많은 돼지 고기다. 돼지고기에는 소고기보다 비타민 B1이 10배나 더 많다고 한다. 돼지고기 삶은 수육에 속대쌈을 싸서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밥도 해서 식사도 함께 하면 서 김장의 피로를 풀며 서로간의 친교를 나누는 일도 김장 날의 즐거운 한 행사다.

한 때 미국으로 이민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가 먹는 김치의 그 특유한 냄새가 온 아파트 내를 진동시켜 이 냄새에 익숙지 않은 현지 사람들로부터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가 있다. 그랬던 그 김치가 지금에 와서는 영양 면에서 우수한 식품으로 인정되어 외국의 주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김치 담그는 수업을 받는 정도가 되었다.

또한, ‘김치’의 고유 상표로 수출까지 하고 있으니 김치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올해도 새로 담근 김치가 잘 익어서 이 겨울, 모든 사람들의 입안에서 속설대로 배추의 다섯 번째 죽음을 통해 그 신비한 맛을 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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