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과 지난 시대의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을 비교해 보면 너무도 판이한 점을 느낀다. 생활환경 면에서 본다면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훨씬 윤택하지만, 청소년답게 사는 모습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것은 부모나 학교에 의한 지나친 공부의 압박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말 배우기 시작하면서 유아원에 가야하고 그 다음은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중· 고를 거쳐 대학을 나오기까지 오로지 죽기 살기로 공부에 집중해야하고 그것도 점수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도 모자라서 각종 학원을 찾아다니며 소질이야 있건 없건 태권도, 피아노, 무용, 발레, 수영 등 남 하는것은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승부는 대입 수능고사, 그리고 대학졸업 후 취업시험에서 결정이 난다.

이 긴 과정이 생지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예전 청소년들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공부 열심히 해 라” 소리는 듣고 살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 인구 중에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80%로써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던 시대라 자녀들을 상급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다. 또, 그 당시는 초등학교마저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기성회비를 납부 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금과 같은 교육열이 생길 수 가 없었다.

그러다가 6.25와 혁명을 거치며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교육의 열기가 일기 시작해서 농촌에서도 논 팔아 소 팔아 대학을 보내기 시작하다 보니 대학을 우골탑이라 할 정도로 대학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생겨난 고급인력은 이 나라 산업화를 이루는데 공헌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교육열은 급속도로 번져 오늘에 이르러 지금은 대졸출신이 과잉 배출되어 고급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내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아 야겠다는 생각, 노동자보다는 화이트칼라로 키우기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예전에는 재력의 뒷받침이 없어서 못 이뤘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재력도 재력이지만 자녀 교육은 곧 출세라는 개념으로 자리잡아 너나할 것 없이 모든 부모들이 자녀 교육은 생의 목표가 된 듯 전력을 투구한다.

며칠 전 대입 수능시험이 끝났지만, 수험생 부모들이 전국 각지의 유명한 사찰이나 영험하다는 돌부처 앞, 교회, 성당을 꽉 메운 채 수능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의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편 수시입학을 위한 논술고사 대비를 위해 유명하다는 학원이 성시를 이룬다. 시골 학생들까지 서울에 올라와 수강을 받는다고 한다. 수능고사가 끝나고 나면 성적 비관을 하다가 자살로 이어지는 수험생도 있다.

교육에 들어가는 사교육비도 어마어마하다. 학자금을 융자를 해서까지 충당하며 대학을 나와야 한다. 경제형편이 나은 집이나 그렇지 못한 집이나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양보없는 경쟁이 되다시피 되었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입시 제도를 여러 차례 바꿨어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 10여 년 모 교육부장관은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이제 이 문제는 정책이나 제도개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자녀교육을 위해 허리를 졸라매 가며 대학을 졸업시켰지만 취업이라도 쉽게 되었으면 오죽 좋으랴. 그래서 이런 실업자 자녀들까지 앉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처지를 풍자하는 ‘캥거루 가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되지 않았나. 자녀 교육도 중요하지만, 100세 시대를 대비해 노후문제도 생각해 봐야 할 일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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