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날씨와 푸르디푸른 드높은 하늘, 울긋불긋 오색의 단풍, 이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더 없는 가을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가로수의 노랗게 물든 부채 모양의 은행잎에 한없이 매료된다. 나뭇가지에 수북이 달려 있을 때도 그렇고, 낙엽으로 우수수 떨어져 온통 노란색으로 보도를 뒤덮어 그 위를 밟고 걸어가는 기분이야 도심에서 어디에 더 비하랴. 은행나무의 낙엽은 쉽게 사그라지지도 않아서 오래도록 그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어린 시절 노랗게 물든 예쁜 은행잎을 주어다가 책갈피 끼워두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다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가을의 한 복판인 10월의 하순에 들었지만, 가로수의 은행잎은 아직은 짙은 노란 물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 열매는 벌써 노랗게 익어 인도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흉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벽이면 사람들이 장대를 들고 나타나 채 영글지도 않은 은행을 털어서 쓸어 담아 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중금속 물질이 오염되었다는 소문에서일까? 아니면 무단 채취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일까?

은행의 열매는 겉 부분을 싸고 있는 노란 과피는 악취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우리가 먹는 부분은 과피 가운데 씨에 해당하는 딱딱하고 흰 껍질 속에, 열에 익히면 연두색의 연한 육질 부분이다. 존득존득해서 씹는 맛과 담백한 맛이 어울려 얼마든지 먹어지는 묘미를 가졌다. 게다가 은행은 진해 강장의 보약이 되기도 하고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은행잎에는 혈액순환제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이 성분을 추출하여 혈액순환의 효능이 있는 의약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뿌리 또한 허약을 보하는 약제로도 쓴다한다. 이토록 은행나무는 자체 각 기관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함을 주는 좋은 나무이다.

나무 자체로 보아도 지구상에 현재 생육하고 있는 나무 중에서는 지구의 생성 과정인 지질시대의 고생대 말기서부터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 장수 수목의 하나이다. 나무의 모양도 수려하여 품위도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노란색 단풍과 맛있고 약효도 있는 열매를 제공하며 병충해도 없다.

그러기에 가로수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 나무이다. 다만 흠이 있다면 떨지는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그 냄새 때문에 가로수를 교체하라고 주장한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자치단체에서는 은행열매를 길에 떨어지기 전에 일제히 따서 따로 처리하여 노인정이나 보육시설 같은데 가져다준다고도 한다. 다 좋은데 단지 그 악취가 문제라면 어떻게 한들 해결책이 없겠는가. 자치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구상을 잘 해서 시민들에게 악취의 불편도 덜어 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
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신은 세상 만물을 창조함에 어느 한 개체에게 장점만 다 갖추어 주지 않고 장점 단점을 다 준 것 같다. 사람도 보면 인물이 잘 났으면 재능이 좀 부족하고, 재능이 출중하면 신체가 허약하고, 마음은 한없이 어질고 착한 반면 재물 복이 없고, 한편 성격이 포악하고 독선적인데도 재물 복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 이처럼 골고루 다 좋게 갖춘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신이 개체 개체에게 완벽함을 안 준 것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형평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뜻이 담긴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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