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을 맞았다. 유난히도 길고 더웠던 지난여름, 추석까지도 더위가 계속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했건만, 역시 염려대로 추석다운 날씨는 찾아볼 수 없고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넘는 한 여름의 더위 그대로였다.

그래도 아침저녁만은 제철답게 서늘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게다가 올 추석은 닷새간의 황금연휴로 맞게 되었으니 정말 여유와 풍성함을 함께 누리는 행운의 추석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아마도 하늘이 특별히 지난여름 긴 폭염에 고생했으니 그 위로로 이런 축복을 내려 준 것이 아닐까 라고 위안을 가져 본다.

예로부터 추석은 풍성함이 상징으로 되어 있지만, 올해는 경기가 침체되어 물가는 오르고 게다가 일본의 해산물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다 하여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 졌고 그 여파로 일본산이건 아니건 해산물에 대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두려움이 생겨 기피하는 바람에 어민이나 수산시장 상인들의 타는 속마음이 말이 아닐 것 같다.

시대상황이, 환경여건이 아무리 변하고 바뀌어도 추석 명절은 고향을 찾고 조상에게 정성스레 차례 상을 마련하여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올리고 성묘도 하는 그 정겨운 전통이 아직은 이어져가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 그리고 일가친척들과의 혈연으로 얽혀진 그 진한 정이 사무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50~60년 전까지만 해도 농경사회였다가 그 후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젊은 세대들이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다 보니 자연 핵가족이 되었고 타향살이 인구가 증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명절이 돌아오면 자연 귀소의 본능이 발동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타향에서 태어난 핵가족 1세대들의 고향의 개념과 일가친척, 선조에 대한 인식이 과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넘나든 세대들과 같겠는가 하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모 일간지에, ‘돈 내시면…조상님 대신 받들어 드립니다’라는 제하에 추석차례를 대신 지내주는 실태를 기사화한 것을 보았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에도 돈을 주고 조상의 묘소를 벌초를 하게 한다든지, 차례 상에 올릴 제수를 주문 또는 사다가 지낸다든지 하는 일은 있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서 더 발전해서 돈을 받고 차례를 맡아서 지내 주는 대행업자까지 생겨나 차례까지 남에게 맡겨서 지내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그뿐이랴, 요즘 관광지 호텔에는 추석차례 영상대행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나 천주교에서는 진작부터 설이나 추석에 차례 상을 마련하고 합동으로 각기 종교 전례와 한국인 전통 제례를 조화한 차례를 지내고 있었다. 바쁘고 고달픈 세상 살다 보면 부득이 벌초도 귀성도 못하고 차례를 못 지낼 형편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군부대에서나,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차례 상을 차려 놓고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다.

이런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공감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벌초나 차례는 대행 업자에게 맡기고 추석연휴 기간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앞으로 다음다음 세대로 넘어가다 보면 지금까지 지켜오던 명절의 정신도 차례의 의식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제례의 형태도 변할 수 있겠지만, 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추석에 담긴 정신만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차례마저 남에게 맡겨서 지낼 바에는 안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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