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겨울에서 봄을 건너 띄고 여름이 오는가 싶었다. 필자가 있는 안성은 아직 꽃구경도 이른 때인데, 한낮의 온도가 영상 25도에 가까우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이라더니 이젠 정말 동남아 기후가 되는 것일까? 

갑자기 비와 함께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겨울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온연한 봄기운을 금방 회복해서 예년 이맘때의 기온으로 돌아왔다. 봄을 아예 생략하지는 않을 작정인가 보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따스한 낮 기운은 봄날을 실감하게 한다.

교회 앞마당 화단을 정리했다. 한 두주만 더 지나도 농번기라 바빠지니 그 전에 해야 한다는 권사님들의 서두름 덕분에 일을 끝냈다. 안 그랬으면 생각만 하다가 그대로 내버려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흙을 퍼내서 포대에 담고 그 일부는 가까운 밭에다가 쏟아놓았다. 찬바람 부는 주일 오후에 여러 분이 오셔서 수고하셨다. 

가지런히 화단을 정비하고 나니 한결 좋아보였다. 이제 화단을 가꾸는 일이 남았다. 꽃 잔디랑 각종 꽃씨랑 뿌려 놓으면 따스한 햇볕과 흙의 기운을 받아 피어날 꽃들을 마음에 그려본다. 

오래 전 2월 말 몇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유럽에도 봄이 막 시작된 때였다. 온종일 햇볕 짱짱한 맑은 날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프랑스 파리에 갔었다. 필자가 그곳을 여행하던 그날은 너무나 밝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파리지앵들도 모처럼 화창한 봄날의 주말을 즐기러 시내로 쏟아져 나왔고 여행객들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온통 축제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봄날의 찬란한 광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금도 마음에 남았다. 

막 봄이 시작된 이스라엘의 초원지대를 여행했다. 차를 타고 지나는 들판 위로 수십 마리의 양들이 목자를 따라 이동하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 푸른 초원에는 빨간 아네모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온통 푸른색에 아네모네의 새빨간 색상은 잠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불과 몇 주만 지나면 건기가 시작되고 그 푸른 색상은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바람에 한순간에 누렇게 되고 만다. 그 전에 아주 잠시 사치를 부리는 짧은 봄날의 기억이다. 

봄이 있는 나라는 그래서 더 행복하다. 춥고 움츠려야만 했던 시간들, 혹은 칙칙한 우기의 시간을 끝내고 잠시 맞이한 봄의 정취를 뭐라 말로 다 설명해내기는 어렵다. 고난 후에 영광이라고 했던가. 시련과 우울함의 어두운 시간을 걷어내고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래서 봄은 ‘희망’이나 ‘새 출발’이란 단어와도 맞닿아 있다. 봄은 그야말로 거대한 힘이다. 가슴을 뛰게 하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의 기지개를 펴게 한다. 마치 아직 여기 내가 살아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구약성경 아가서를 보면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13).

봄은 노래를 부르는 계절이다. 봄의 설레는 마음을 담은 노래 ‘꽃송이가’나 ‘봄봄봄’이든, 아니면 화창한 봄이 더 미운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봄이 좋냐’이든, 봄에는 우리 감성을 말랑하게 하는 무엇인가를 지녔다.  

저 남녘에서는 이미 매화가, 산수유가 활짝 피었단다.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조금 있으면 이곳에도 서서히 봄꽃의 소식이 들리겠지. 

이러한 감성이 사치스럽고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봄은 그저 바쁜 나날의 시작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봄날을 핑계 삼아 우리 마음을 좀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몇 번 갔던 서울 어느 한정식 집 이름이 ‘봄날’이었다. 그 이름을 보고 생각이 깊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인생에서 봄날은 언제였을까? 아니, 봄날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 봄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봄날 같은 기쁨이 다시 시작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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