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곳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묘소 위치, 유서 깊은‘성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1. 이곳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소가 위치하고 ‘침묵 중에 기도하며 순례하는 곳’으로 알려진 미리내성지가 있다.

미리내성지는 신유박해(1801)를 피해 산골로 숨어든 교우들에 의해 형성된 곳으로, ‘미리내’라 불리는 까닭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밤마다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이날 필자가 도착한 주차장에서는 성지와 잘 어울리는 트라이 톤(Try-Tone, 일본그룹)의 ‘ペィチカ/Pechka’라는 종교적 느낌의 음악이 흘러 나와 필자가 서 있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미리내성지 내 순례길을 따라 걷다 보니 평일인데도 불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천주교인들이 침묵 속에서 기도를 드리는 광경을 곳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수백 년간의 천주교 역사가 담긴 미리내성지를 둘러봤다. 

 ■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당진 솔뫼에 위치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가문이 양반 가문임에도 불구,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박해(못살게 굴어서 해롭게 함)를 받게 됐으며, 1827년에 들어서 박해를 피해 용인의 골매마실로 이주해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6세의 나이에 은이 공소에서 신학생으로 선발 돼 신학교가 있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고 신학생으로서 조선 입국을 위한 개척자로 활동하다가 1844년 부제품(副祭品, 신품 성사의 첫째 단계 품. 미사 전례를 도울 수 있는 권한과 강론을 하고 성체를 주는 권한이 부여된다)을 받고 1년 후인 1845년, 25세의 나이로 사제(司祭, 주교와 신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수품됐다. 

한국인 최초로 사제가 된 것이다.

사제가 된 후에는 서울과 용인을 중심으로 조선의 교회들을 돌보다가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돼 1846년 새남터(조선시대에 사형을 집행하던 곳)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참수 당해 순교했다. 순교 직후 새남터 모래밭에 가매장됐다가 이 소식을 들은 17세의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가 포졸들의 눈을 피해 시신을 수습하고 현재의 미리내성지로 옮겨 김대건 신부의 묘소에 시신을 안장했다.

이후 1984년, 김대건 신부는 성인품(聖人品, 교회가 시성식(諡聖式)을 통하여 성인으로 확정한 지위)에 올랐으며,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 미리내성지 “굳건한 신앙공동체”

미리내성지의 ‘미리내’는 순 우리말인 ‘은하수’로, 시궁산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위치한다.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서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등잔불)빛과 별빛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 같아 보여 붙여진 지명이다.

과거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양평·용인·안성·화성·시흥 일대와 더불어 충청도 천안 목천, 진천 베티, 동골 등 교회 초기 신앙 선조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 중 한 곳이었다.

미리내와 인근 이십리(약 8KM) 안에 있던 한덕골·골배마실·검은정이 등의 교우들이 신유박해(1801년) 이후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훗날, 미리내성지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하게 됐으며, 신자들은 이곳에서 주로 척박한 밭을 일구거나 그릇을 구워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미리내 교우촌은 주로 충청도에서 피난해 온 신자들로 구성됐는데, 훗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옮겨온 ‘이민식 빈첸시오’의 집안도 조부 때 미리내로 이주해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까닭에 굳건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1846년 10월 30일, 이곳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안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청년 김대건 길’과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
 
 
 
 

스페인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최고의 성지 순례 코스로, 매년 세계의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천주교인들에게는 살면서 한번쯤 꼭 방문해 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한국에도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순례길이 존재한다. 바로 지난 2020년 안성 미리내성지~용인 은이성지까지 이어진 10.3km 길이의 둘레길인 ‘청년 김대건 길’이 정식으로 조성됐기 때문이다.  

‘청년 김대건 길’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박해를 피해 매일 밤마다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며 사목활동을 해 오던 길임과 동시에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그의 시신을 안장하기 위해 이동한 이장 경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천주교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또한, 미리내성지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이 존재한다. 해당 성당은 1925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 이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복자’라는 칭호로 시복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길이 8m, 너비 4m의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건립됐으며,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관의 일부 조각이 안치돼 있다. 

‘복자 기념 성당’,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 기념 경당’ 등의 명칭을 거쳐 2020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 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지난해 말 문화재청은 기념성당의 역사적 가치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예고하기도 했다.

 ● 글을 마무리하며

미리내성지는 종교적 의미의 방문 외에도 평택·안성 시민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넓은 들판과 시원한 듯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두고 올 수 있는 곳. 

비록, 종교적 의미가 큰 성지이지만, 이 또한, 우리나라 선조들의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꼭 종교적 의미를 둔 방문이 아니더라도 인근의 풍경이 아름답고 화려해 관람을 목적으로 한 방문도 좋을 것 같다. 순교자를 기리는 곳인 만큼, 숭고한 정신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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