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에 대한 복수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나라의 왕 합려의 신임을 받으면서 그 기회를 보고 있었다. 합려 역시 자신이 중원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나라를 이겨야 했기 때문에 군신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초나라의 소왕이 낭와라는 아들에게 병사를 주고 오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으나 손무와 오자서가 있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했다. 뿐만 아니라 초나라의 영토 일부를 또 차지 하였다. 합려는 즉위한지 9년이 되던 해에 오자서와 손무를 불러 초나라를 지금 공격해도 될지 물었다. 

손무와 오자서는 초나라의 공자 낭와는 욕심이 많아 주위의 당나라와 채나라가 원망이 심한 상태이므로 이들을 동맹으로 삼으면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다. 합려는 그 말을 받아들여 두 나라를 동맹으로 삼은 후 초나라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수라는 강을 두고 오나라와 초나라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합려의 동생 부개가 5천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초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이에 패한 초나라 장군은 다른 나라로 도망갔고 오나라는 수차례의 접전 끝에 드디어 초나라의 수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초나라 왕은 도망갔고 오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도성을 점령했다. 한편 초나라 왕은 수나라로 피신하였으며 오나라는 이를 추격하여 소왕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수나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 합려의 동생 부개가 형이 전쟁을 하는 동안 오나라의 수도로 와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합려는 초나라를 포기하고 병사를 돌려 부개를 공격하였다. 부개는 다시 초나라로 도망쳤고, 초나라 소왕은 부개에게 관직을 주고 오나라와 싸우게 하였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 오나라의 합려는 자신의 아들인 부차(夫差)에게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고 초나라는 자신의 수도를 이전하여 국가를 보전하였다. 오자서와 손무는 서쪽으로는 강력했던 초나라를 공격했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압박하고 남쪽으로는 월나라를 복속시켰다. 

다시 수년이 지난 후 오나라가 월나라를 공격했는데 월나라의 왕 구천이 오나라를 이기고 합려는 상처를 입게 되었으며 이후 상처가 덧나 죽게되었다. 그는 죽음에 이르자 아들인 부차를 불러 자신의 복수를 부탁했다. 부차는 다시 병력을 훈련시켜 2년이 지난 후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나라의 왕 구천을 회계산이란 곳에서 포위하였다. 

이때 구천은 많은 뇌물을 백비에게 주고 화해를 청했으며 자신은 부차의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자서는 화해에 반대했고 틀림없이 화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차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월나라와 화해했고 이후 많은 전략에 있어서 오자서를 배제하였다. 

당시 월나라에서 뇌물을 받았던 백비는 오자서와 관계가 나빴고 틈만 나면 왕과 오자서를 이간질 하였다. 옳은 말을 하는 강직한 오자서를 왕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를 다른 나라와 내통한다고 거짓을 말해 왕으로 하여금 오자서를 죽이도록 하였다. 

오자서는 자살을 명령받자 자신의 식솔들에게 “자신의 무덤 위에 나무를 심어 훗날 오나라 왕의 관을 만들도록 해라. 그리고 나의 눈을 빼서 동문쪽에 매달아라.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죽은 후 오나라의 세력이 약해지자 이번에는 월나라의 구천이 병사를 이끌어 오나라를 공격했다. 부차는 선물을 보내고 항복을 하겠다고 했으나 월나라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부차를 죽였다. 또한 왕과 오자서를 이간질했던 백비 역시 믿을 인물이 안된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 오자서의 비극적인 삶의 궤적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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