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신탕, 즉 개의 식용 문제에 있어 옹호론자도, 그렇다고 폐지론자도 아니다. 지금처럼 각종 건강보조식품과 의약품이 넘치는 시대에 굳이 보신탕이라는 이름으로 개고기 식용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십여 차례 보신탕을 먹었던 것 같다. 대부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초대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딱 한번 내 의지로, 그것도 보신탕집에 일부러 혼자 찾아가서 먹었던 적이 있다. 1995년 6월 신학대학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전도사로 교회에 봉사하고 있었기에 주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또 주중 학교에서는 강의 수강과 각 과목마다 요구하는 과제물의 부담 때문에 한 학기 내내 서너 시간의 잠으로 버텨야 했다.

학교에서 공공연히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공부하다 죽어도 순교다” 그만큼 실력 있는 목회자로 준비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학우들 대표가 교수님들을 면담하고 과제물을 줄여달라고 요구할 만큼 그 학기는 유독 힘이 들었다. 학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제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 준비기간 한 주간이 주어졌다. 

필자는 그때 제대로 쉬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었고, 거의 탈진 상태였다. 이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보신탕이었다. 수술 받은 후나 평소에도 피로회복에 보신탕이 좋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던 터였다. 

요즘 같으면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거나, 효과가 좋다는 약이나 드링크를 마셨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그때 당장 시험을 앞두고서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필요했다. 

터벅터벅 걸어 당시 수원 법원 사거리 근방의 보신탕집을 찾았다. 식사 시간도 다 지났는데 덩그러니 혼자 앉아 보신탕을 시켰다. 보신탕이 나왔고 식사기도를 했다. 그때만큼 그렇게 식사기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때 기도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앞으로 평생 목회사역을 하려면 신학교 시절에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고 성경을 알아야겠는데, 하나님! 지금은 제가 너무 지쳐있습니다. 이것 먹고 체력을 보강해서 기말시험도 잘 감당하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목사가 되겠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공부에 매진했던 때였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물론 계속 공부를 이어가겠지만, 지금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목회자로서의 훈련을 철저히 받아서, 그것을 기초로 평생을 목회 현장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간절한 심정을 담아 식사 기도를 하고 보신탕을 먹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보신탕을 먹은 이후 며칠 동안 몸이 든든하고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고 덕분에 기말고사를 잘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보신탕의 효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도 간간히 보신탕을 먹은 적이 있지만 그때의 그 기력의 충만함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는 그저 간절함이 하늘 어딘가에 닿아서라거나, 아니면 자기 암시의 효과라고 할지 모른다. 무슨 엄청난 기적이거나 무슨 중병에서 일어난 것도 아닌 고작 탈진에서의 회복이고, 더구나 겨우 보신탕 한 그릇에 얽힌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때 하나님의 힘주심을 경험했다.

단지 육체 피로에서의 회복만이 아닌 마음의 안정과 평안함이 찾아왔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나름의 이유로 하나님의 힘주심을 구하며 절실하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바라고 있을지 모르겠다. 구하는 자에게 거뜬히, 그리고 기꺼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바란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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