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강(長江)은 약 6천 킬로미터가 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 하류는 중국의 절강성과 상하이 앞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데 장강의 하류는 비옥하여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이 잘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중국어로 ‘어미지향(魚米之鄕)’, 즉 생선과 쌀의 지역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춘추전국 시기에 이곳에 두 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오나라와 월나라이다. 원래 가까운 이웃일수록 분쟁도 많고 갈등도 많은데 이 두 나라 역시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잦은 전쟁이 있었고 서로간에 사이가 나빠 ‘오월동주(吳越同舟)’란 말도 생겨났다. 

이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인물이 등장했는데 바로 오자서이다. 오자서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 오사는 초나라의 태부라는 관직에 있었고 성격이 강직했다. 오사는 초나라의 평왕이 잘못을 저지르자 이를 지적했으나 왕은 화를 내면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 간신이었던 비무기는 평왕에게 오사의 두 아들이 모두 뛰어난 인재이므로 이들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평왕은 오사를 불러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다. 

이 말을 들은 오사는 큰 아들 오상은 워낙 효성이 뛰어나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나 동생인 오자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평왕이 사람을 보내 오씨 형제에게 아버지를 살리려면 초나라로 올 것을 명령했다. 형인 오상이 초나라로 가려고 하자 오자서가 막아서면서 말했다. 

 “평왕이 우리를 오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 삼부자를 없애기 위한 계책이 분명하니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가면 안됩니다” 라고 형을 만류했다. 오상은 “나도 그곳에 가면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급에 처해있는데 가지 않는 것은 불효가 되니 나는 가야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너는 도망가 훗날 아버지와 나를 죽인 원수를 갚아다오. 나는 가서 아버지와 함께 죽음을 맞이 하겠다”라고 하였다. 

결국 오상은 초나라로 가서 아버지 오사와 함께 죽게 되었다. 오사는 죽으면서 앞으로 초나라는 오자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오자서는 송나라로 도망을 갔고 다시 정나라로 도망을 갔다. 오자서는 곳곳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떠돌던 오자서는 오나라까지 오게 되었고 당시 오나라의 공자였던 광에게 오나라 왕인 요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초나라와 오나라 간에 전투가 있었는데 공자 광은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오자서는 왕에게 공자 광에게 초나라를 멸망시키도록 공격하기를 주청했다.

그러나 공자 광은 오자서가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라고 이를 반대했다. 

이후 5년의 시간이 지난 뒤 초나라 평왕이 죽었고 소왕이 왕위에 올랐다.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 오나라 요왕이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공자 광은 이틈을 이용하여 오왕 요를 암살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으니 바로 오왕 합려이다. 

합려는 왕이 되자 다시 오자서를 불러 자신을 돕도록 하였다. 합려는 왕이 된 후 3년이 지나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했다. 그리고 초나라의 도성이었던 영이란 곳까지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장군이었던 손무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이를 만류했다. 

다음해에 또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의 육과 잠이란 곳을 차지했고 그 다음해에는 월나라를 공격했다. 오왕 합려는 자신의 밑에 손무와 오자서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합려가 다시 오자서와 손무에게 초나라 공격에 대해 물었다. 그제서야 가능하다고 하였고 대군을 동원하여 본격적인 초나라 공략을 시작했다. 준비된 오나라의 군대는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하였으며 오자서도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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