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산 박두진의 모든 것이 기록된 ‘상설전시관’

 - 박목월·조지훈과 함께 청록파(靑鹿派) 3대 시인으로 불려

청록파(靑鹿派)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박두진 시인은 과거 1946년, 박목월·조지훈 시인과 함께 공동 시집인 ‘청록집’을 출간했다. 청록파 3대 시인이라는 칭호는 이들 셋이 ‘청록집’을 출간하면서 붙여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따스한 햇살과 매서운 바람이 공존하던 지난 10일, 경기도 안성시 남사당로 198-11에 위치한 박두진문학관을 방문해 안성출신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한국문학계에서 뚜렷한 한 획을 그은 ‘박두진’ 시인에 대해 알아봤다.
 
● 혜산(兮山) 박두진의 “잊을 수 없는 일대기”
 
 
1916년 안성군 안성읍 봉남리에서 태어난 박두진 시인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9년 대한민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의 나이 24세,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통해 문예지 「문장」에 자신의 시 작품 ‘향현(香峴)’과 ‘묘지송(墓地頌)’이 발표되면서 등단(문단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한 것이다.
당시 정지용 시인은 박두진 시인의 작품에 대해 식물성(植物性)·신자연(新自然)이라고 표현하며 소개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두진 시인의 초기 시(詩)에는 빛과 사물 등 자연을 노래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박두진 시인의 본격적인 행보는 문예지 ‘문장’이 폐간된 지 5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1946년 6월, 자신과 함께 등단한 문우인 박목월·조지훈 시인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면서 ‘청록파 3대 시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후 1949년에는 지금까지도 박두진 시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첫 개인시집인「해」를 출간했으며, 우리민족의 비애인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창공구락부(공군종군문인단)에서의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때의 박두진 시인은 코메트(공군 기관지)와 전선문학(문예지) 등의 지면을 통해 국군의 활약과 더불어 전쟁의 고통을 알리는 데 힘썼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전쟁 이후의 작품에서는 왜곡된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과 저항정신, 민족애와 인류애에 헌신하려는 휴머니즘적 정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초기의 식물성(植物性)·신자연(新自然)의 특징을 띄는 작품 성향이 한차례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후 1970년에 들어서 수석(壽石, 관상용의 자연석)과 종교를 통한 새로운 시적 시도를 한다. 「수석열전(1973)」과 「속·수석열전(1976)」에 이르러는 자연·인간·신을 노래하겠다 다짐했던 시적 목표를 성취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전쟁을 거치는 등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박두진 시인은 생전 20여 권의 시집과 더불어 1,000여 편에 달하는 시(詩), 400편의 산문 작품을 현대문학에 남기고, 시인활동을 시작한지 59년이 지난 1998년,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 안성시의 큰 그림 “박두진문학관의 탄생”
박두진문학관은 지난 2018년, 박두진 시인이 묻힌 안성시 기좌리와 안성의 진산(鎭山)인 비봉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안성맞춤랜드 북쪽 끝자락에 건립됐다.
실제 박두진문학관의 전신(前身, 신분, 단체, 회사 따위의 바뀌기 전의 본체)은 지난 2004년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안성시에서 급하게 마련한 안성시립보개도서관 3층 내 자리한 박두진 자료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자료실로 출발했지만, 박두진문학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2010년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다.
2012년에는 박두진 유품 및 유족 보관 자료 조사를 거쳤으며, 2016년 4월에는 기본설계에 돌입했다. 
같은 해 9월 박두진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출범하고, 2년간의 전시관 공사 등 준비과정을 거쳐 2018년 11월, 3층 규모로 정식·개관했다. 박두진문학관의 전신인 박두진 자료실은 문학관 개관 한 달 전인 2018년 7월 14년간의 임무를 끝마치고 폐관했다.
박두진문학관 개관 당시 안성시 시장이었던 우석제 시장은 “박두진문학관은 상설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관람객과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행사 등을 준비해 전시, 교육, 휴식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라며, 건립 취지 및 슬로건에 대해 설명했다.

● 1·2·3부로 조성된 박두진의 예술세계 
 
 
 
 
 
 
지난 2018년 조성된 박두진문학관은 1층 북카페·수장고와 2층 전시실, 3층 전망대로 구성돼 있다. 
1층 북카페에는 총 2,000여 권이 넘는 도서가 비치돼 있으며,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서가에 꽂힌 도서를 열람할 수 있었다.
특히, 박두진문학관의 꽃으로 불려진 2층 전시실에는 박두진 시인의 삶과 문학적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도록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등의 상설전시와 특별전시기획실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는 박두진의 초기 시(詩)와 6·25전쟁 이후의 시(詩), 신의 의지(종교적)와 자연의 섭리에 대한 후기 시(詩)의 특징 등 작품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에서는 실제로 박두진 시인의 서재(書齋, 서적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를 전시실 한편에 똑같이 구성해 놓았다. 
실제로 박두진 시인은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재에서 아침부터 독서를 하거나 청탁받은 원고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는 박두진의 문학 이외의 글씨·그림·수석 수집·조각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을 소개하는데, 이는 예술과 일상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으며, 예술작품을 만들고 즐겼던 박두진 시인의 예술세계를 많은 관람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 글을 마무리하며
예전과 달리 시인(詩人)이 많아진 요즘이다. 시(詩)를 통해 자가치유(자기 혼자 치료하거나 치유하려는 행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더니 아무래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필자는 ‘박두진’과 같은 시인(詩人)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한 평생 시(詩)를 쓰고, 대학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예술생활과 일상생활의 구분 없는 삶을 영위한 박두진. 그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특별하다고 느꼈다.
박두진 시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해’처럼 평안신문 독자들의 삶에도 맑고 진한 해가 솟고 솟아 우뚝 솟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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