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에 별로 못 보던 대행 업종들이 많이 생겨났다. 흔히 알 려져 있는 몇 가지만 들어봐도, 대리운전·심부름센터·흥신소· 택배·퀵서비스 등이 떠오른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제각각이고 따라서 직업도 다양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등록된 직종은 1만2천306종이 있다고 한다. 하긴 모든 직종들이 큰 의미로 본다면 다 대행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행이란 남의 일을 맡아 하는 일이거늘, 이 세상에 내가 할 일을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는게 몇이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필요한 일들을 대행하며 그사이 적당한 거래를 통해 대가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게 세상이치가 아니겠는가.

다만, 악의적이고 부도덕한 대행이 있어 그것이 인륜을 해치고 사회악 을 유발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가끔 길 가 전봇대나 전철 안 게 시판에 붙은 작은 쪽지에 ‘못 받는 돈 받아 줍니다’ 라는 광고를 본 다. 돈을 빌려 주고 못 받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반가운 말 이겠는가.

그러나 실제 채권자도 못 받는 돈을 받아준다는 데는 정당하고 합법적이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받아 내는 것인지는 의문이 간다. 그뿐이랴, 돈을 받고 청부 살인을 하는 사례도 있다. 옛날에도 이렇게 돈 받고 차마 못할 일을 대신하는 경우가 있었다. 태형을 받는 죄인을 대신하여 돈을 받고 그 모진 매를 맞는 사람도 있었다.

6.25 전쟁 때에도 전방 고지에 포탄이나 병사들의 밥을 져다 나르는 노무자로 40대 사람들을 징발했던 때가 있었다. 이때에도 돈 있고 힘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돈을 받고 그 총알받이의 전쟁터로 나간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대리로 매를 맞거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를 희생 하면서까지 남의 짐을 떠 않는 비애가 서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대리 행위가 불법이지만, 양 당사자 간에 은밀한 약정으로 을이 갑의 이름으로 나갔기에 좀처럼 감독 당국에 들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새로운 대리 업이 등장했다. 즉, ‘우리가 학교 폭력을 해결하겠으니 연락 달라’, ‘돈 주면 때린 애를 때려줍니다’ 이런 전단을 학교·아파트 주변에 붙이고 영업을 광고하며 또 직접 피해 학부모에게 전화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피해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만족한 대책이 없는데 대한 실망한 나머지 이런 해결사에게 의뢰하겠다는 쪽이 많다고 한다. 왕따와 교내 폭력이 끊임없이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 그동안 학교 자체에서나 당국에서 별의별 처방을 내려 봤으나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피해 학생 측에서는 하루도 편할 날 없이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이 죄 없이 심한 폭력에 시달리며 보복이 두려워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공포와 고민 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맞아 죽거나 자살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거부 할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피해 학부모들의 이런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받고 가해 학생을 시원스럽게 손을 봐 주겠다는 학폭 해결사들의 발상도 건전치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보복을 하겠다는 학부모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돈을 주고라도 보복을 하겠다는 학부모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하고 보면 결국 내 아이도 가해자가 되는게 아니겠는가. 이렇게 되면 죄가 죄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때에 정체불명의 돈벌이 해결사들이 복수를 대행하겠다고 나섰으니 새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학교 측이나 경찰은 교내 학폭과 교외 해결사들을 다 막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판이다.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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