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종 전문박물관으로 개관

 - 소장유물 2,910건 4,098점에 달해

안성시 서동대로 4726-15 안성맞춤박물관. 이곳은 ‘시민이 주인인 행복한 박물관’이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2002년도 1종 전문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안성맞춤박물관 관계자는 “관람객이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기획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안성시 대표 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안성시민이 주인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는 ‘안성맞춤박물관’을 방문해 안성의 역사와 농업·특산물 등 향토문화에 대해 알아봤다.

 
 

 

 

 

 

 

 

 

 

 

 

 

 ● 안성의 모든 것을 담은 ‘유일무이 박물관’

안성맞춤박물관은 유기(鍮器)를 중심으로 안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는 테마박물관으로 지난 2002년 8월 1일, 지상 2층, 지하 1층 총 3층 규모인 1종 전문박물관으로 건립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총 2,910건 4,098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박물관 내부는 유기 전시실·영상실·기획 전시실·농업역사실·향토 사료실·세미나실·학예연구실·수장고 등으로 이뤄져 있다.

1층에는 유기전시실이 있어, 유기의 역사, 제작 방법별 유기의 분류, 유기의 제작과정 모형 및 제기(祭器)·반상기(飯床器)·무구(巫具) 등 실생활 속에서 쓰이는 다양한 유기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 곳곳에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물이 설치돼 있어, 이를 통해 안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2층에는 농업역사실이 자리한다.

안성 농업의 역사 및 계절에 따른 농경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안성농업의 변천사를 알 수 있도록 기획됐다.

농업 역사실과 함께 조성된 향토 사료실은 안성장터의 옛 모습 등과 같은 고전 사진과 안성 장시 재현 모형, 안성의 불교 문화재 등 안성역사와 문화가 기록돼 있다.

● 안성의 유기(鍮器)

안성맞춤박물관 1층에 위치한 유기 전시실에는 안성 유기의 재질적 특징과 한국 유기의 대표적 제작법을 이해하고 그 종류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유기제작과정·유기공방 모형 전시, 주물유기 제작과정 영상 스크린이 마련돼 있다.

실제로 안성은 예로부터 유기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는 안성이 조선시대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발달해 이를 기반으로 한 수공업이 성행한 까닭으로 알려졌다.

안성유기에 대한 기록은 16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다. 인조 때 형조판서와 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역임한 택당 이식(李植) 선생의 문집 「택당집(澤堂集)」에서 안성 유점(鍮店, 유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안성의 유기 장인들이 수공업촌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의 규모라면, 이미 이보다 훨씬 전부터 안성지역에서 유기 제작이 성행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로 작용하는 셈이다.

1835년 경 서유구(徐有榘, 조선후기 실학자)가 저술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라는 실학적 농촌경제정책서에 의하면, 이미 안성장에서는 마포(麻布, 삼실로 짠 천)·면포(綿布, 무명실로 짠 피륙)·사기(沙器, 석영 따위의 가루를 빚어서 구워 만든, 희고 매끄러운 그릇)·유기(鍮器, 놋쇠로 만든 그릇)·목물(木物, 나무로 만든 물건)·갓, 삿갓(笠子,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도롱이(簑笠)·가죽신(皮鞋, 가죽 구두) 등과 같은 각종 수공업품이 거래돼 왔다고 기록돼 있다.

개중에서는 유기(鍮器, 놋쇠로 만든 그릇)가 안성의 대표 수공업품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했는데, 이를 통해 안성의 유기장(유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선수장인(善手匠人, 명장)’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국가 의례에 빈번히 동원됐다고 한다.

국가 의례 동원은, 안성지역의 유기 문화가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으로, 조선후기에 안성유기가 ‘안성맞춤’이라 지칭되는 등 지금의 명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계기이다.

 
 

 

 

 

 

 

 

 

 

 

● 안성 농업의 변천사(變遷史)

안성맞춤박물관 2층에는 농업역사실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은 안성 농업의 역사와 계절별 농사과정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써레(흙덩이를 잘게 부수거나 땅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데 사용하는 연장)·멍에(마소가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목에 거는 막대)·장군·물지게(물을 이는 지게)·무자위(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농기구)·절구(곡식을 빻거나 찧는데 쓰는 용구)와 마지막으로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는다’의 유래인 가래(흙을 뜨고 파는 데 쓰는 농기구) 등 농기구 제작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재는 쓰이지 않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다양한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안성의 대표 농·특산물인 쌀, 배, 포도 등에 대한 유래와 설명도 전시장 한편에 관람객을 위해 상세하게 기재된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 호국·선비·장인·예향 등 4대 정신을 강조한‘향토사료실’

안성은 대대로 호국·선비·장인·예향 등 4대 정신을 강조해 왔다. 이는 고려시대 안성의 경우, 몽고와 홍건적, 왜구의 침입을 막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몽고의 침입에는 고려시대 무신인 안성출신 박서(朴犀) 장군이 귀주성 전투를, 송문주(宋文胄) 장군이 죽주산성에서 적을 물리쳤으며, 홍건적의 난 때는 민중 전체가 항거하는 등 강력한 호국정신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가장 유명한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널리 알려진 양성·원곡 4·1의거도 이와 같은 호국정신에서부터 파생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함께 정신적 문화유산인 선비정신을 안성향교·죽산향교·양성향교·덕봉서원 등을 통해 승화·발전시켜야 할 덕목으로 여기고 현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어오고 있다. 

유기와 한지, 꽃신 등 ‘안성맞춤’이라는 명성을 얻은 안성의 특산물을 제작하는 장인들 또한, 조선시대 한양사대부가 및 지방 수령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했으며, 예로부터 안성시에는 바우덕이 남사당패·여류명창가 강소춘·명창 모흥갑 등 유명 예술인들이 배출됐다.

위와 같은 역사와 기록·행위·교육·발전의 토대를 만든 여러 서사들이 호국·선비·장인·예향 등이 안성시 4대 정신으로 강조되는 까닭일 것이다.

● 글을 마무리하며 

안성맞춤박물관은 안성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안성시에서 직영으로 운영을 하고 있으며, 관람료 또한, 무료로 운영된다고 하니 얼마나 유익하고 좋은가.

또한, ▲전통 유기 공방 그림 탁본 체험 ▲안성시 문화재 스탬프 ▲안성시 문화재 전통문양 그리기 등의 다양한 상설 체험프로그램도 함께 진행 중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변해가고 있으며, 신기술의 개발로 인해 수많은 ‘옛 것’들이 사장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성맞춤박물관에는 그대로 보존된 ‘옛 것’이 많다. 이번 주말은 안성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 ‘안성맞춤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지 필자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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