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은 매우 유용하다. 세상사에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없다(전 10:19, money is the answer for everything). 돈이 없는 것은 불편함 그 이상이다. 고도로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요새 어린 세대의 대표적인 장래 희망은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는 것이라 한다. 유명 유튜버나 파워 블로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명예와 함께 돈과 권력이 집중된다. 

나이가 좀 더 든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어떠할까? 그들의 최종적인 희망과 꿈 중 하나는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건물주’란 재정적인 안정을 누리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사치를 부리며 살 수도 있는 여력을 상징한다. 재정적 안정은 누구나 바라는 희망이다.   

돈은 가치중립적이다. 많은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디에 돈을 투자하는지에 그 사람의 가치관이 들어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마 6:21). 

문제는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가지려 한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위해 남의 목숨까지도 빼앗는다. 돈은 유용한 목적을 위한 수단인데, 돈 자체가 오히려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성경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을 경고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예수께서는 재물에 눈이 어둡게 되면 인생 전체가 어둡게 된다고 경고하신다. 눈이 몸의 등불로서 눈이 성하면 온 몸이 성하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게 된다. 마찬가지로 돈에 눈이 멀게 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마 6:22-23). 돈이 권력이 되고, 돈이 신이 되는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경고한다(마 6:24). 

최근 우리나라 극장에 개봉된 영화 중 하나는 세상에서 온갖 욕망이 집대성된 곳을 ‘바빌론’으로 상징했다. 영화계의 속내를 조명한 이 영화는, 영화계가 인간의 욕망이 가장 극대화된 공간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곳을 바빌론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바빌론으로 상징될 수 있는 욕망과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거래되는 품목을 소개한다.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 사람의 영혼들이라”(계 18:11-13). 거래 품목 중 가장 마지막 언급되는 것이 사람의 영혼들이다. 

사람들의 미래 걱정의 대부분은 돈과 관련 있다. 은퇴 후 노후생활이나, 각종 질병과 사고에 대한 대비도 다 돈과 연관된다. 오늘 하루 걱정도 만만치 않은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일들까지 미리 당겨 와서 걱정한다. 내일 걱정하느라 오늘이 평안치 못하다. 예수께서는 그런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예수께서 진정으로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인생의 주인이 돈이 아닌 하나님이 되시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허락된 부유함은 진정 복이 될 것이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돈과 함께 망하는 자가 아니라, 돈과 함께 흥하는 자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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