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곡·양성 4·1 의거, 2일 간의 해방 맞아

- 의주·수안과 더불어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불려

“잊혀 지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 필자는 지난 5일 새해를 맞아 순국선열들의 얼을 다시금 알리기 위해 ‘안성3·1운동기념관’을 방문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이번 겨울 들어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곳곳에는 태극기가 펄럭이며 마치 필자를 반겨주는 것처럼 보였다.

100여 년 전, 일제의 폭압에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맞섰는지. 안성3·1운동기념관은 어떤 곳이고 어떤 것들을 기록하고 전시하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 원곡·양성 4·1의거와 전국 3대 실력항쟁지

 안성은 북한에 위치한 평안북도 의주·황해도 수안과 함께 일제강점기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불리고 있다. 이는 일제가 우리 민족 대표 33인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안성·의주·수안을 대표적인 항쟁지로 인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일제의 입장에서 안성 3·1만세운동·4·1만세항쟁이 그만큼 격렬하고 완벽하게 성공한 의거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1919년은 우리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해일 것이다. 일제에게 우리민족의 항일정신을 톡톡히 각인시켜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 안성군(현 안성시)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19년 3월 11일 안성읍내의 독립만세운동이 발단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안성의 독립만세운동은 양성·원곡·죽산면에 걸쳐 격렬하게 전개됐다.

안성시에서 가장 크고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은 양성·원곡면 주민들이 합심한 합동시위였다. 1919년 4월 1일 오후, 독립운동가 이유석·홍창섭·최은식 등이 주동한 가운데 2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이렇게 모인 시위군중은 경찰관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 등을 파괴하고 2일 간의 해방을 이뤄내기도 했다. 당시 발행된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안성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안성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것이 다른 지역의 3·1운동과 비교해도 안성의 3·1운동이 상당히 큰 사건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성3·1운동기념관 ‘탄생’

안성3·1운동기념관은 지난 1989년 전국최초로 3·1운동 역사를 담은 원곡·양성 3·1운동 사료전시실로 시작됐다. 이후 1994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중앙관심사업으로 선정돼 원곡·양성 3·1운동 성역화가 추진됐다.

이에 안성시는 1919년 3·1운동 당시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서 가장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일제식민통치기관을 완전히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이룩한 안성4·1만세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림과 동시에 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후세들에게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 43억 원(도비 20억여 원, 시비 15억여 원, 국가보훈처 7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30,422㎡(9200여 평)부지에 1,237㎡(약 370평)짜리 지상2층으로 구성된 3·1운동기념관을 건립했다.

기념관에는 안성지역 만세운동과 관련한 유물 및 기록·역사적 자료의 실물·모형 전시, 체험관·영상물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과 안성지역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총 328명의 독립운동가 위패가 봉안된 광복사(光復祠), 만세고개 기념비, 안성3·1운동 기념비, 무궁화동산, 국기게양대, 체험교육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 경기도 최다 독립운동가 보유.. 328명의 독립운동가 위패 봉안

현재 안성3·1운동기념관 내 마련된 광복사(光復祠, 사당)에는 1월 5일을 기준, 총 328명(포상자 251명, 미포상자 77명)의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이는 독립운동 인물 발굴 사업으로 인해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안성시의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이 큰 성과를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안성시에서는 최근 3년간 총 8명의 독립유공자가 포상됐다. 이에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안성시 독립유공자의 수는 총 251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203명의 유공자가 3·1운동으로 포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안성시가 우리나라 3·1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과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아울러, 안성시는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 58명의 후손 찾기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업무협약을 맺고 후손을 찾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지역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캠페인’, ‘자료·현지조사’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성3·1운동기념관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 미전수 훈장을 전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라면서, “독립유공자분들의 명예와 예우를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다. 미전수 훈장이 전부 전수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 관람료 무료화와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의 승격

안성3·1운동기념관은 지난 2003년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관리번호 13-1-1)로 지정됐으며, 2013년 3월부터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관람료 무료화 정책을 전격 시행했다.

같은 해 6월에는 개관 12년 만에 제2종 박물관(경기도 등록 제13-박-04호)으로 정식 등록됐다가 지난해 12월 9일, 시설 개선 및 소장품 수집 등 승격을 위한 꾸준한 노력 끝에 2종 박물관으로 등록된 지 9년 만에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승격되는 쾌거를 이뤘다.

실제로 2014년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공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각종 기념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유물 연구, 학술, 전시 등을 이어오고 있다.

1종 전문박물관 승격 당시 안성3·1운동기념관 관계자는 “정체성 확립과 위상 제고를 위한 전시·교육·연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국내·외 기관과의 교류협력과 더불어 쾌적한 환경과 문화서비스 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미래상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 글을 마무리하며

먼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수립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헌법 전문에 명확히 규정된 사실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현재까지도 독립유공자 포상은 계속되고 있다. 그 분들의 행적을 연구하기 위한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의 조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역사를 연

구하고 조사하더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잊혀 지기 십상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격언처럼, 순국선열들의 얼이 후대에도 길이길이 기억되고 부디 잊혀 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하는 건, 그것을 ‘기억’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애국은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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