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인에게 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한 청지기가 있었다(눅 16:1-8).

청지기는 주인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아 집안의 재정과 종들을 관리하는 재산관리인이다. 

청지기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주인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시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부정을 저질러 주인 재산에 큰 손해를 주었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주인은 청지기에게 그 동안의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명령한다(2절). 하던 일을 셈하라는 것은 그가 관리하던 장부를 정리하라는 것이다. 

주인의 명령에 청지기는 자기의 앞날을 걱정한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눅 16:3).

그는 궁리 끝에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낱낱이 불러 주인에게 진 빚을 대폭 탕감해 준다.

아직 면직을 당한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자기가 면직을 당한 후에 자기가 잘 대해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였다. 

그는 주인이 그 지역에서의 자기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빚을 탕감해 준 것을 취소하지는 못할 것을 예감한 것이다.

이 청지기는 나쁜 사람이다.

그 동안 숱하게 주인을 속여 왔다.

진실하지도 못하고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성실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주인은 그를 칭찬했다.

칭찬 받은 이유가 그의 '지혜로움' 때문이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이 비유를 예수께서 드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도 자기 앞날을 걱정하여 열심히 대비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신자들은 어떠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칭찬을 들은 이 청지기의 지혜는 무엇일까? 첫째, 이 청지기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주인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인의 간섭과 질책이 없으니까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는데, 내게 주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했을 때, 그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인생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째, 이 청지기는 남아 있는 시간을 선용했다.

청지기는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기회, 남아있는 권한을 최선으로 사용했다.

주인은 그의 행위가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 앞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주인이 셈하라고 준 그 시간을 잘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누가 진정 지혜로운 사람인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생명, 건강, 재능, 재물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으니 언제나 내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기 상황을 빨리 깨닫고 미래의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기회로, 지금 있는 자원으로 내게 그것을 맡겨 주신 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청지기의 지혜이다.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언젠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2023년이 선물처럼 우리에게 왔다. 올해는 토끼의 해라고 한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꾀 많은 토끼는 3개의 숨을 굴을 파 놓는다는 뜻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할 수 있는 플랜B, 플랜C를 함께 마련해 둔다는 의미다.

위기라 부르는 올해에, 위기에 잘 대처하는 지혜로운 청지기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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