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 달력을 이미 11월 초에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때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은 곳곳에 걸린 내년 달력이 어색하지 않다.

올해 달력의 마지막 장과 내년 달력의 앞장이 혼재한다.

지금은 내년을 계획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고, 아직은 살아가야할 올해의 한 달이 남아있기도 하다.

새해를 시작할 때는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여 재고가 많아 남아있는 듯한, 그래서 살아가야 할 남은 날이 꽉 차있는 느낌이라면, 12월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재고 떨이에 나서야 할 날 같은 느낌이다.

마치 잔치를 다 마치고 이제 자리를 정리하고 치워야 할 것 같은 그런 때이다.  

12월은 그래서 정리의 달이다. 정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준비’와 ‘포기’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준비’의 차원에서 정리다. 정리는 뭔가를 가지런히 배열해 놓는 것이다. “흐트러지거나 어수선한 상태에서 한데 모으거나 둘 자리에 두어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고 잠시 멈추어 반성해 보고, 내년에 좀 더 개선된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혹시 바쁘고 분주했지만 방향성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엡 5:15).

올 한 해를 정리해 본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포기’의 차원에서의 정리다. 결국 이루지 못할 것, 할 수 없는 것을 떠나보냄이다.

새해가 되면 뭔가 많은 계획을 하고 야심차게 시작하지만 연말이 되면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이 쌓여있다.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참에 과감하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내 삶에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하여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과 행동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는 없는지를 들여다보는 일도 필요하다.

시간사용이나 업무에서도 그러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약간의 정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건강하지 못한 부분, 균형이 무너진 부분이 없는지를 돌아보고 정리해야 할 때이다. 

성경의 지혜자는 계획 없고 무질서한 삶에 대해 이렇게 경계한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잠 24:30-32)

인생에 ‘가시덤불로 가득한 포도원’, ‘무너진 돌담’같은 부분은 없는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가지런히 정리해보고, 또 어떤 부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이 좀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훨씬 삶을 질서 있게 하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다. 

깨끗한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의 차이는 쓰레기가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니다.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있느냐, 아니면 그 밖에 널 부러져 있느냐의 차이다.

물론 쓰레기통이 넘치기 전에 치우는 것도 포함하겠지만 말이다.

정리란 있어야 할 자리에 가지런히 갖다 놓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 없는 것은 치워버리는 것이다. 

매번 맞는 새로운 하루가, 새로운 달이, 그리고 새로운 해가 시간의 매듭을 짓게 하고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이라도 더 성숙하고 진보해가는 삶이었으면 참 좋겠다. 

12월을 사는 지금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잘 정리해 두면 그 다음 행보가 훨씬 편하고 수월하다. 짧게는 올 한해와 내년, 길게는 지금까지 삶과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바쁘게만 살지 말고 한번쯤 정리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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