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말기에 맹상군을 비롯한 여러 제후나 군주들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식객을 모집하였다. 또한 식객들 역시 자신들의 전략과 사상을 인정할 수 있는 세력가를 찾는 식객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위나라에 범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면서 공부를 하였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력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국인 위나라에서 당시 관료였던 수가라는 사람 아래에서 식객을 하게 되었다. 수가가 위나라의 사신으로 제나라를 방문했고 이때 범수는 그를 수행하였다. 제나라와의 교섭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수개월 동안 제나라에 있다가 귀국하게 되었다. 

제나라의 왕은 수가를 따라온 범수가 상당히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금과 술 등을 하사했다. 범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수가는 범수를 오해하고 그가 위나라의 기밀을 팔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위나라로 돌아왔으나 사건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위나라의 제상은 수가의 말을 듣고 범수가 틀림없이 위나라의 기밀을 팔았으므로 고문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범수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이가 빠지는 고통을 겪었고 그가 기절하자 대나무로 만든 틀에 넣은 다음 화장실에 그를 버렸다. 화장실 아래에 놓인 범수에게 많은 사람들이 소변을 보게하고 그를 죽게하였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았던 범수는 화장실 문지기를 매수해 구사일생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탈출한 후 정안평이란 사람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름을 바꾸고 숨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침 진나라의 소왕이 위나라에 사신을 보냈는데 정안평은 그의 수행원이 되었다. 사신이 정안평에게 위나라에서 데리고 갈만한 인물이 있는지를 물었다. 

정안평은 범수를 추천했고 실제로 그를 만난 후 데리고 가기로 결심을 했다, 사신과 범수일행이 진나라의 국경에 도착했을 때 진나라의 재상인 양후가 국경을 순시하고 있었다. 양후는 다가와 혹시 식객이나 제후를 데리고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양후는 진나라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사신이 없다고 하자 양후는 그를 가도록 보내주었다. 그러나 범수는 사신에게 틀림없이 양후가 또 다시 검문하러 올 것이라고 귀뜸을 하고 미리 내려 도망쳤다. 

범수의 말대로 양후는 의심이 많아 다시 찾아서 마차를 수색했으나 이미 범수는 도망치고 없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에 도착한 범수는 진나라의 소왕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1년이나 만나주지 않았다. 

범수는 일부러 상소문을 쓰고 왕이 만나자고 하자 큰 소리로 진나라에는 왕은 없고 태후와 재상 양후만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진나라 왕은 그때서야 범수를 만나 모든 사람을 물리친 후 부국강병의 방책을 물었다. 범수는 진나라의 왕이 태후와 재상인 양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위험해지고 나라의 앞날도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감히 아무도 하지 못하는 말을 범수가 내뱉자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방법을 물었다. 범수는 진나라의 지형이나 국력이 이제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왕이 실권을 가지지 못하고 태후와 재상, 그리고 친인척이 득세를 하고 있으므로 언제든지 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꺽이고, 가지고 죽으면 나무도 죽는다”라는 말을 왕에게 들려주었다. 

진나라의 소왕은 그 말을 들은 후 기회를 엿보다가 태후를 폐하고 양후, 고능군, 화양군 등 왕실을 어지럽히던 관료와 친인척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후 범수를 진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하여 자신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식객 범수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후 한 나라의 재상이 된 과정에서 “살아 남는자”가 승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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