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은 본래 유다왕국의 왕족출신이었다.

만일 나라가 평안했다면 그는 왕족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바벨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서서히 망해갔다.

완전히 망하기까지 3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많은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는데, 이것을 역사적 용어로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라 부른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의 유다 침략으로 이루어진 제1차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나라를 잃어버린 채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나라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조차 하나님의 거대한 뜻 가운데 있음을 선포하는 선지자로서 소명을 받는다.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역사가 거대한 제국들에 의해 움직여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땅에 구원자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영적인 왕국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여러 가지 꿈과 환상, 그리고 기적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드러낸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디아와 페르시아 제국이 패권을 잡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의 탁월한 지혜를 인정받아 계속해서 왕의 최측근으로서 국정을 자문하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는 이렇게 세상의 관료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왕국의 신하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방 왕들에게 전했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세상역사의 흐름과 미래 세상의 종말에 있을 무서운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더 두려워 떨게 만들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환상이 아니었다. 

다니엘이 마치 죽은 자처럼 몸이 굳어버리고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리는 같이 되어버린 것은 ‘한 사람’에 대한 경험이었다(단 10장).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장차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게 될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한 환상이었다(단 10:5-9). 

그는 이 환상을 보며 온 몸에 힘이 빠졌고, 몸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했다고 토로한다.

영광스러운 신의 ‘현현’(顯現, Theophany)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다니엘은 신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떨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단 10:17). 

성경은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경험할 때 공통적으로 그 찬란한 영광에 압도당하고 절대 거룩 앞에서 추악한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된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그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니엘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소망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환상 가운데 ‘사람 같은 이’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다니엘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의 위로와 힘주심을 경험한 다니엘은 그제야 힘을 얻어 미래에 대한 계시를 받을 수 있었다(단 10:19). 요즘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참 혼란스럽다.

나라간의 분쟁 등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고, 기후나 전염병을 비롯하여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또한 그렇다. 예전에는 없던 일들, “설마 그런 일들이?”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과학과 기술이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오히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평안은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하시면서 다니엘에게 하셨던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는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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