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거룩하다 하며, 또 어떤 것을 세속적이라고 구분하는가? 보통 ‘거룩’이란 단어는 종교적 영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적인 활동과 관련된 일이나 사람에게는 한자로 ‘거룩할 성’자를 붙인다. 종교적인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성직자’(聖職者)라 부르고,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사람들을 ‘성도’(聖徒)라고 부른다. 종교적 노래를 ‘성가’(聖歌)라 하고, 예배드리는 건물은 ‘성전’(聖殿)이라 한다. 이 외에도 많다. 

반면 종교적 영역이 아닌 일반 세상의 일들은 ‘세속적’(世俗的)이라고 여긴다. 일반적인 직업에 종사하면 성직과는 반대로 ‘세속적’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주일은 ‘거룩한 주일’이라 부르지만 다른 요일은 거룩하다기 보다 ‘그저 그러한 날들’로 취급한다. 심지어는 주일에 나와 기도하기를 “일주일동안 세상에서 죄를 짓다가 거룩한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 나왔다”고 회개 한다. 일요일은 ‘주일(主日)’인 반면, 다른 날들은 ‘죄일(罪日)’인 셈이다. 할 수만 있으면 예배당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제일 안전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성경이 말하는 거룩과는 거리가 있다. 하나님과 직접 관련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행동들, 즉 예배, 기도, 찬송, 봉사, 전도 등은 하나님을 위한 행위임으로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그러면 종교적인 일이 아닌 비종교적인 일들은 거룩하지 않은 것일까? 

만일 ‘성직자’가 하나님의 영광보다 교회와 성도들을 이용해 개인의 성공과 출세를 추구한다면 과연 그 일은 성직(聖職)이라 할 수 있을까? ‘성도’(聖徒)가 주일에는 천사처럼 예배하지만, 나머지 다른 날 동안 사회에서는 온갖 죄를 짓고 살아간다면 과연 그것이 성도의 합당한 삶일까?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오로지 자기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한 기도라면 그것이 거룩한 행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적인 일과 비종교적인 일을 구분하는 것과,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종교적인 일을 주로 하는 성직자의 행위도 세속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반면 종교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며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므로 거룩하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것 중에 하나가 ‘만인 제사장’(萬人 祭司長) 개념이었다. 종교적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벧전 2:9). 그런 구별된 의식을 갖고 살아갈 때 그가 무엇을 하든, 어느 곳에 있든 그가 선 땅은 거룩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코람데오’(coram Deo)의 정신을 강조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인데 어느 때, 어느 곳에서건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문구인데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망치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말이 있다. 즉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서, 자신이 하는 일상적인 일들조차 그 연장된 기도 의식 가운데 있다는 말이다. 물론 중요한 종교의식으로서의 기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종교행위만 거룩하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하찮은 것이라 치부하는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거룩한 주일만이 아니라 나머지 6일의 삶조차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이요, 그래서 ‘연장된 예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고 교훈한다(엡 6:7, 골 3:23). 그것이 종교적인 일이든, 아니면 비종교적인 일이든 간에 모든 일이 하나님과 관련 있다고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일조차 거룩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신자들이 일상에서도 이러한 거룩함을 실천하여 산다면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삶으로도 예배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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