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는 두 가지를 향해서 움직인다. 첫째는 생존의 문제이고 그 다음은 경제적 번영이다. 생존과 번영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서로 맞물려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기 수많은 제후 국가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이를 제공하는 많은 책사와 모략가들, 사상가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秦)은 중원의 서쪽에 있어서 후발주자였으나 상앙의 법치를 받아들여 춘추전국시기에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생존과 번영은 지금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간에 서로 동맹과 협력을 시도했고 그 갈등이 첨예화되고 긴장이 지속되면 우발적 사건에 의해 큰 전쟁이 발생한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역시 동맹들간의 대립으로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cold war)의 시기를 겪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등장했으나 최근에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냉전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생존하기 위해서 상호협력관계를 맺고 이익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이를 합종연횡(合從連橫)이라고 한다. 춘추전국 시기, 강력한 진나라에 맞서기 위해 보다 힘이 약한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대항했는데 바로 합종책이다. 한편 진나라에 의지하여 우호동맹을 맺는 경우, 이를 연횡책이라고 하였다. 합종과 연횡은 창과 방패의 관계처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합종책의 대표적인 책사는 소진(蘇秦)이었고 이에 대항하는 연횡책을 만든 사람은 장의(張儀)였다. 소진은 원래 동주의 낙양사람이었고 산동성에 있는 제나라로 가서 유명한 귀곡(鬼谷)에게 유세술을 배웠다. 

그는 이후 여러 해 동안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과 책략을 설파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고향에 돌아오자 그의 가족 심지어는 그의 부인도 그를 비웃고 무시했다. 그의 부인은 일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면 거지같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구박했다. 

소진은 이후 집안에서 나가지 않고 많은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중 주나라 시기에 발간된 음부(陰符)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강태공이 지은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그가 열심히 다시 공부한 결과 그는 자신만의 독심술을 익히게 되었고 이제 이를 통해 다시금 세상에 나가려고 했다. 

그가 다시 주나라의 현왕을 찾아 만나려고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발길을 돌려 진나라로 향했다. 진나라는 마침 효공이 죽고 그의 아들 혜왕이 왕을 하고 있었다. 소진은 혜왕을 만나 진나라가 지정학적으로 뛰어난 곳이고 인구를 잘 활용하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혜왕은 “새가 깃털이 다 자라지 않으면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한다”라고 하고 아직 진나라의 국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거절을 당한 소진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동쪽에 있는 조나라를 방문했다. 당시 조나라의 재상은 왕의 동생이었는데 소진을 만나주기는 하였으나 그의 생각을 수용하지 않았다.

비록 많은 제후들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또 다른 나라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북쪽에 자리하고 있던 연나라를 방문했고 1년을 기다려 연나라의 문후를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은 연나라는 동서남북이 안전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휩쓸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나라 남쪽의 조나라와 진나라가 자주 싸우는 덕분에 병력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합종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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