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발자국 소릴 내며 다녀가곤 한다.

가을의 중턱인 추분이 지나면서 절기의 변화가 완연해 지고 있다.

수확의 계절 가을의 대명사처럼 잘 익은 과일들이 미소를 짓고 있는 광경은 농부의 얼굴을 닮았다.

하늘 표정이 맑고 밝다.

하늘이 높고 푸르르니 마음속이 청량함을 머금어 새날들이 기쁨으로 이지고 있는 것 같다.

시절이 배가 부르고 눈요기가 많아 마음이 풍요로운 계절 가을 이니까 더욱 행복해 지는 느낌이다.

들판에 곡식들이 모두 수확되고 긴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여름을 식혀주던 푸른 잎사귀들이 오색 치장을 하고 조용히 내려앉을 것이 분명하다.

누런 벼 이삭들이며 붉은 수수이삭이나 배부른 콩들이 알곡을 내뱉고 생을 옮겨 가기위한 마감을 준비하는 동안 우린 따뜻한 겨울나기 궁리에 여념이 없을 것 이다.

앳 띄게 파랗던 과일들이 제각기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긴 동면을 준비 하면서 몸속 당도를 높이고 있는 동안도 우린 온유하고 긴 겨울을 계획하며 옷깃을 여며 차가운 공기의 유입을 막을 중대한 계획으로 밤을 지새우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간 추억들을 더듬어 보면 늘 그랬듯이 뿌리를 감추고 몸을 낮춰 체온을 오래 간직하려 시린 기온들을 호호 불어대며 준비운동으로 몇날 며칠을 보내기도 할 것이지만 그리 생소하지 않은 행동들에 안도하게 될 날들도 있을 것이다.

알알이 들어찬 곡식들의 서열이 정해지고 제 각기의 갈 곳으로 흩어지고 나면 들판에 쓸쓸히 서서 세찬 바람들을 헤집고 있을 빈 옥수수 대궁처럼 속이 허하거나 가붓해 질 것도 짐작이 끝났다.

찬바람이 지날 때마다 유난히 부대끼며 부스럭 거릴 수수깡처럼 철저히 속을 비우고 가벼운 소리만으로 최대한 자세의 호신술을 발휘할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을 생각해 본다.

밀림처럼 꽉 들어찼던 긴 생각들을 압축 시켜가며 화려했던 지난날들을 채점하듯 숙연해 지는 심사의 시간이 지금이 아닐까 싶다.

아직 이른 가을의 문턱에서 겨울을 걱정하는 세심함 뒤에는 어느새 나악함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징조 일 것이다.

아침저녁 기온차가 넓어져 웅크림과 펼침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초가을 일상들이 어쩌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진 우리들의 생활 패턴과 많이 닮아 가고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호주머니 속에 한 손을 넣어보곤 잽싸게 꺼내 본다.

아직 물들지 않은 채 서둘러 떨어진 철 잃은 낙엽하나 벤치에 어색하게 앉아서 남은 과정들을 헤아리듯 가을 벤치 앞에 서서 하나 둘씩 무언가를 가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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