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박근혜 대통령이 3박 4 일간의 중국 국빈 방문 일정에서 마지막 방문지가 시안이었다. 그래서인가, 필자가 18년 전, 중국 여행길에 시안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한 것은 1992년으로 이제 21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중국은 죽의 장막, 중공 등으로 불려 졌었다. 중국은 6.25 전쟁 때 북한군을 도와 참전해서 우리와 싸웠던 적국 이었기에 국교가 없었으니 중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중국을 크게 변화 시켰고 그 공산국가 죽의 장막을 활짝 걷히게 했다. 그래서 마침내 적성 국가였던 중국과 국교를 맺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필자도 수교 3년 만에 가깝고도 먼 그 미지의 중국 땅을 밟아 볼 수가 있었다.

시안(西安-우리 발음으로는 서안)은 중국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진, 수, 당, 송대에 이르는 천여 년의 수도였고 당시의 이름은 장안(長安)이었다.

시안에는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천여 년의 수도였음이 말해주듯 불가사 의한 역사유적이 많았다. 그중에서 진시황제의 병마용이 있는 박물관이 기억에 떠오른다. 진시황제는 당시 전국시대, 제. 은. 연, 한, 금, 위, 진, 등 7개국을 평정하고 스스로 진국의 시황(始皇)이라 하여 그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과시한 황제였다.

황제란 칭호도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황’ 자와 ‘제’자를 딴 것이라 한다. 그 는 13세에 등극하여 22세에 실권 을 장악했다한다. 병마용(兵馬俑) 은 진시황제가 사후에 자신의 능침을 지키기 위해 능원 동편에 병사 와 말의 도용(陶俑)을 만들어 땅에 묻어 둔 것이다.

이를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 하게 됨에 이를 발굴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용(俑)이라 함은 고대 중국에서 순사자 대신 매장하는 인형을 말하며, 이 병마용은 진시황 능을 호위하기 위한 지하 군단과 같은 것이다.

현재 발굴된 병마용이 있는 갱은 4개이고 1호 갱 규모는 길이 230m, 폭 65m, 깊이 5m 정도이고 병마용의 키는 176cm 이상 큰 키이며 6천 개나 된다고 한다. 아직도 계속 발굴 중에 있다하니 그 방대한 규모가 놀라울 뿐이다.

2천 년 전에 흙으로 빚은 병·마 의 생생한 모습을 보면서 진시황제의 위용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수 천 병사와 병마 를 전투태세를 갖추어 그대로 땅 속에 배치해둔 그 발상이 현대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에 죽은 황제를 지켜 주리라는 이 병마용이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후손들에게 관광수입을 올려 주게 되다니… 18년 전, 필자가 중국을 갔을 때 만해도 어느 유적지나 명승지에 가도 외국 관광객이나 좀 있을뿐 본 토인들은 드물었다.

다만 남루한 차림의 현지인 잡상인들만이 관광 객을 따라다니며 1달라!, 1000원! 을 연호하며 별스럽지 않은 물건을 들고 따라 붙었다. 그런데 요즘의 중국은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관광지마다 가면 중국 본토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또한 지금의 중 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강국이 되었다.

이제 또 한 번 세상이 바뀌어 적성 국가였던 중국과 우호 협력관계 나라로 발전하여 우리 박근혜 대통 령이 국빈방문으로 가서 전례 없이 극진한 예우와 환대를 받으며 중국의 지도자들과는 물론, 인민들에게 까지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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