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로 가는 길 아침에는 날이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오른쪽 차장에 앉아 쉼 없이 이어지는 풍경화를 보려 하여 밖으로 자주 시선을 붙였다. 창밖은 산과 들과 집이 짙푸르게 지나가고 해바라기 칸나 꽃들이 피어오르니 오늘 하루의 여행은 설레임이다. 

대하소설 ‘혼불’의 최명희문학관은 전주한옥마을 중심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한옥 지붕과 돌담 안에는 최명희 작가의 혼과 불이 그대로 타 오르고, 낮은 돌담 벽돌 돌멩이 하나에 그려진 들꽃무늬가 유난히 햇볕에 반짝였다. 

유리 상자 안 나선형 계단으로 높이 쌓인 원고지들! 원고지 1만 2,000매 분량에 이르는 작품이다. 누에가 평생 실을 뽑아 지은 집 같다.

작가의 체취와 생전 목소리가 세상에 아직 살아 시선이 닿는 대로 나에게로 전해온다.

‘혼불’ 위에 쓰던 만년필의 촉, 그리고 종이에 새겨진 우리말의 빛나는 어휘들이 소설 속에 씨앗이 되어 내 속에서 움트고 있다.

소설 속에는 세시풍속, 무속신앙, 관혼상제, 신분제도. 의상, 음식들이 손에 잡힐 듯 구체화한 내 나라 모국어가 생기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조금 전 한옥 문학 길 위에서 만나 금방 친구가 된 두 여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 셋이서 함께 골목을 걸었다.

삼십분 짜리 한복을 빌려 입는 시간,  고르며 입으며 우리의 낯선 모습에 스스로 반하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장소가 눈에 띄면 바쁘게 사진을 찍고 마음껏 오늘을 누리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과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만나, 낯선 길을 기탄없이 체험하는 인연이 신기하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하룻길을 한옥과 문학 골목을 누비며 자유 시간에서 돌아오는 저녁 어스름까지 어린아이같이 걸었다.

이렇게 문학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조금씩 작가와 한옥을 닮아간다.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입니다.’

또박또박 쓰인 최명희 작가의 글이 내 마음속에 펜촉으로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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