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지만 공동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고사성어 중에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오월은 오나라와 월나라를 지칭하며 중국의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제후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양자강 남쪽 지역으로 지금의 강소성과 절강성에 위치하고 춘추전국 시기에는 중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관심을 가지지 않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초나라가 강해지면서 그 주위의 지역도 조금씩 중원에 편입되기 시작하였고 초나라는 중원에서 패권을 노리기도 하였다. 

오나라는 주나라와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주나라의 태왕에게 세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이 태백이었고 둘째 아들은 중용이었으며 셋째 아들은 계려였다. 태왕은 큰아들 보다는 막내 아들인 계려에게 더 마음이 갔고 왕위를 손자에게 물려주었다. 당시에는 이미 장자 세습의 전통이 있었기에 실망한 큰 아들 태백은 동생인 중용과 함께 양자강을 넘어 남쪽으로 이주 하였고 여기서 자신의 터전을 만들기 시작하여 오나라를 세웠다. 

태백은 남쪽에서 자리를 잡은 후 중원의 당시 고급 문화를 전파하였고 농경 등의 기술을 알려주어 주위의 신망을 받으면서 그 세력을 확대해갔다. 그가 죽은 후 수대에 걸쳐 오나라는 중원의 국가들과 특별한 교류없이 남쪽 지방에서 그 힘을 키웠다. 이후 수몽이 왕이 되었을 때에야 중원의 국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서쪽에 있던 당시 강대국인 초나라와 경쟁을 하게 되었다. 

  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힘을 합쳐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기에는 성을 3개나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초나라의 역습을 받아 오히려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 이후 요왕이 왕위에 오른지 2년이 되던 해에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그 다음해에 초나라를 또 공격하였으나 역시 이번에도 패배의 쓴 맛을 보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중국에서 지략가중의 한명으로 손꼽히는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했고 공자 광이란 사람이 오자서를 자신의 집에 머물수 있도록 도왔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오사, 형은 오상이었다. 원래 이 오씨 집안은 초나라의 명망이 있는 집안이었고 왕들에게 충직한 간언을 해오던 집안이었다.

초나라 평왕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태자 건의 스승으로 오자서의 아버지인 오사를 삼고 그 조력자로 비무기를 삼았다. 

비무기는 권력욕이 강했고 태자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원래 태자 건은 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하였는데 그 공주가 미인인 것을 알고 아버지 평왕이 그 공주를 차지 하도록 술수를 부렸다. 비무기는 자신의 이러한 행적이 들통 날 것이 두려워 평왕에게 태자를 험담하고 왕과의 거리가 멀어지도록 하였다. 왕은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태자를 멀리 하였고 반역을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때 강직한 오사는 태자를 송나라로 도망가도록 하였고 자신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간신인 비무기는 왕에게 오사의 두 아들이 있는데 이들을 불러 한꺼번에 제거해야 한다고 왕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오사에게 너의 두 아들을 불러 오면 살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때 오사는 큰 아들은 틀림없이 오겠지만 둘째 아들인 오자서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버지에게 가려는 형에게 오자서는 우리가 가면 아버지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므로 가서는 안된다고 말렸다. 형인 오상은 자신은 아버지를 따라 죽을테니 동생인 오자서에게 복수해줄 것을 부탁했다. 

결국 오사와 큰 아들 오상은 죽임을 당했지만 둘째 아들이었던 오자서는 송나라로 도망가 태자 건을 받들어 훗날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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