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의 장왕이 맹주가 되어 중원에서 세력을 떨친 후 그가 사망하자 초나라의 국력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초장왕의 아들인 공왕도 오래 살지 못했고 그 아들인 강왕 역시 단명했다.

강왕은 자신의 아들인 겹오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숙부인 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위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영왕이다. 이 사건은 조선 시대에 세조가 권력을 찬탈하려고 어린 조카 단종을 유배 보내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과 비슷했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영왕은 천하의 제후들을 모아 자신이 맹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회맹을 열겠다고 통보하였다. 이때 신하인 오거가 영왕에게 회맹의 방법과 목적은 다양한데 어떤 맹주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오거는 영왕에게 두 개의 예를 들었다. 첫째는 하나라와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 왕들의 사례로 모두 제후들을 잘 대접하고 선정을 베풀어서 맹주가 되었다.

반면 제나라의 환공과 진나라의 문공은 힘으로 제후들을 억압하여 맹주가 되었다. 이 두 개의 사례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가 하고 물었다. 

영왕은 제나라의 환공과 같이 힘으로 누르겠다고 했고 억지로 회맹의 자리를 열었으나 진나라와 송나라, 노나라와 위나라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스스로 맹주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자만하기 시작했다.

영왕은 이제 주변의 나라들을 공격하여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옆에 있던 오나라를 공격하여 주방의 땅을 포위하고 그 영주였던 경봉을 가두고 일족을 모두 죽였다. 경봉은 영왕을 향해 형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욕을 했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재위 8년에는 동생인 기질을 시켜 진(陳)나라를 멸망시켰고 10년에는 채나라의 제후를 초대하여 술을 취하게 한 후 그를 죽인 후 채나라를 정복하고 그 땅을 기질에게 주었다. 

그의 야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오나라의 동맹인 서(徐)나라를 공격했다. 당시 비록 유명무실하지만 여전히 주나라가 존속되고 있었는데 주나라도 비판하여 주위 나라들이 영왕을 성토했다. 

외부뿐만 아니라 초나라 내부에서도 백성들의 인심이 영왕을 버리기 시작했다. 영왕이 회맹을 할 때 월나라의 관료였던 상수과에게 모욕을 주었고 채나라의 대부 관기를 죽인 일이 있었다. 관기의 아들인 관종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로 망명하여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민심이 영왕을 떠났다고 판단한 관종은 오나라 왕에게 초나라를 공격할 것을 건의했고 월나라의 상수과에게도 초나라를 같이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영왕의 형제들인 비와 기질과 협력하여 내부에서도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초나라의 수도를 공격하고 영왕의 아들을 죽였다. 형제들도 영왕을 배신했고 동생인 비가 초나라 왕이 되었고 나머지 형제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영왕은 자신의 태자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 수레에서 떨어졌다. 그러면서 자식을 잃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라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자 그 옆의 시종은 세상의 부모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란군에 쫓긴 영왕이 배를 타고 두 번째 도시로 도망가려고 하자 이때 많은 신하들이 모두 그를 버렸고 혼자만 남게 되었다. 결국 그의 자만심과 권력욕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자기 스스로도 후회와 고통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패가망신(敗家亡身)이라는 말은 집안이 망하고 자신은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괴롭히면 언젠가는 이러한 비극을 맞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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