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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98사마천의 사기를 말하다(14) 남방의 신흥 세력, 초장왕(楚莊王)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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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27  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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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나라가 비록 세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천자(天子)라는 명맥이 살아 있어 왕(王)이라는 호칭과 유명무실한 주군의 역할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주위의 제후국들은 제후 혹은 공(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편 중원의 남쪽에 새롭게 초나라가 등장했다. 초나라의 위치는 중국의 장강 남쪽에 있어 주류 문화가 아닌 독자적인 남쪽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중원에서 바라볼 때 초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로 여겨졌고 그래서 주왕실은 자작(子爵)의 지위만 부여했다. 초나라는 더 높은 지위를 요구했으나 주나라 왕실은 거부했다. 

  초나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왕이라 칭하기 시작했으며 주변의 국가들을 하나씩 점령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였다. 성왕 시기에 이르러서는 남쪽에서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고 중원의 다른 국가들과도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성왕이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자 그를 폐위시키려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목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갑작스럽게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이 초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바로 초장왕이다.  

  장왕이 왕위에 오르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정국이 수습되지 않은 혼란의 시기가 도래했다. 혼란이 해결되자 그는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매일 사냥과 여색에 빠져 국가가 점차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신하들에게 만약 자신에게 간언을 하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였다. 아무도 그에게 간언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때 용감한 신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장왕 3년에 오거라는 신하가 초장왕을 만나러 오자 그는 오른 쪽에는 남쪽 월나라의 미인을, 왼쪽에는 북쪽 정나라의 미녀를 안은 채 그를 만났다. 오거는 초장왕에게 3년동안 날지않고 울지도 않는 새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새입니까 라고 그를 간접적으로 꼬집었다. 그러자 초장왕은 3년을 날지 않았어도 한번 날면 하늘에 닿을 것이며 3년을 울지 않았어도 한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오거를 돌려보냈다. 

  이후 소종이라는 신하가 찾아와 자신이 죽더라도 왕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비판하자 그때서야 장왕은 향락 생활을 멈추고 국사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에게 아첨하던 간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새롭게 신하들을 선발하였고 자신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했던 오거와 소종에게 국정을 운영하도록 맡겼다. 

  장왕은 먼저 인근에 있던 용나라를 멸망시켰고 또 왕위에 오른지 6년째에 송나라를 정벌하여 세력을 넓혔다.

이후 재위 8년째에는 낙양의 남쪽에 있던 융족을 정벌하고 주나라 수도 근처에서 군사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강대한 힘을 과시하였다. 

  이후 재위 9년째에 약오라는 재상이 반란을 일으키자 일족을 몰살시켰고 또 몇 년 후 서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정나라를 공격했고 정나라는 항복하고 말았다. 한편 진(晉)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으나 패배하였고 많은 군사를 잃고 말았다. 초장왕의 세력 확장은 계속 되었다. 초나라에서 제나라로 보낸 사신이 송나라에서 죽었는데 이를 빌미로 송나라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초장왕이 이렇게 강력한 국가를 성립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를 그의 행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절영지연(絶纓之宴)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초장왕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축하연을 여는데 갑자기 등불이 꺼지고 그의 애첩이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초장왕은 그 범인을 찾지 않고 그냥 연회를 마쳤다. 수년 후 초장왕이 전쟁터에서 위기에 빠져 있을 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해주었다. 

  초장왕이 감사함을 전하자 그 장수는 그날 애첩을 만진 것이 자신이었고 목숨을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초장왕의 관용이 그를 죽음에서 구했고 또 나라를 크게 이룰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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