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긴 하지만, 더위의 절정인 삼복중에도 초복이 이제 겨우 지났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닥쳐와 앞당겨 더위를 맞고 있다. 그것도 보통 더위도 아닌 무더위 속이다. 특히 ‘무더위’는 보통 더위와 달리 습도가 있어서 더위와 뒤섞여 몹시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다. 그래서 온 몸에 눅눅한 땀기가 서려서 옷을 입어도 옷이 몸에 달라붙을 정도가 되어 더위와 함께 더욱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무더위는 장마철에 주로 겪는 더위다. 똑같은 고온의 여름 더위라도 습도가 없는 건조한 더위는 공기 유통이 잘 되는 옷을 입거나 양산으로 햇볕에 피부 노출을 가리거나 그늘에 있으면 그다지 심한 더위는 피할 수가 있다. 기온이 40도가 넘는 중동 사막지대 사는 사람들이 저런 높은 온도 속에 어떻게 온몸을 휘감는 옷을 입고 다니나 하고 이상하게 보았는데 그 지역은 습기 없고 건조해서 옷이 몸에 달라붙지 않는 장점이 있는 데다 강한 햇볕을 막아 주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 년 내내 높은 온도와 높은 습도인 열대 지방 사람들은 몸의 주요 부분만 가릴 정도로 거의 노출 상태로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방이기에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다. 옷은 체온을 기후 변화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여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요즘처럼 이렇게 무더운 장마철이면 어린 시절에 입고 다녔던 잠뱅이 생각이 난다. 잠뱅이는 잠방이의 방언이지만 흔히 잠뱅이라고 불렀기에 표준어처럼 불러 온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다양한 옷감이 생산되지 않아 시골에서는 직접 밭에서 재배한 삼(麻마)의 안 껍질에서 뽑아낸 베실이나 목화에서 뽑아낸 면실로 직접 집에서 삼베와 면포를 짜 내었다.

특히 삼베(마포)는 수분을 잘 흡수하고 땀 배출 작용과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어 남자들은 잠뱅이를 여자들은 적삼(홑겹저고리)을 만들어 여름철에 입었다. 잠뱅이는 가랑이가 무릎정도 내려오는 짧은 홑바지로 요즘 반바지와 같은 옷이다. 요즘에 와서는 삼에는 마약 성분이 있어 대마초라 하여 함부로 재배할 수 없는 식물이 되었다. 그래서 베잠뱅이를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잠뱅이라는 이름조차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예전에 여름철이면 흔히 입던 값싼 삼베옷이 요즘에 와서는 고가의 수의로 이용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이 시대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기능과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상과 문양의 복지들이 생산되어 갖가지 의상들이 제조되어 나와 계절에 어울리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옷들을 선택해 입는다. 얼마나 좋은 시대가 되었는가. 지금은 잠뱅이라는 뜻도, 국어사전에서나 찾아 봐야 할 정도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삶이 편리해 짐을 누가 탓하랴만, 우리 고유의 언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