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교회가 평택에서 안성으로 변경되었다. 안성시 보개면에 위치한 기좌리교회다.

사택은 사정이 있어서 당장 이사를 하지 못하고, 평택의 교회 짐을 먼저 옮겼다. 

이사는 여러모로 피곤하다. 정리할 짐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다.

오랜 동안 켜켜이 쌓인 짐들을 몇 주 전부터 나름 정리를 했다.

그랬는데도 이삿짐은 5톤 트럭을 넘어 작은 차량을 추가로 한 대를 더 불러야 했다. 

목회자의 이삿짐은 포장이사 업체 입장에서 별로 달갑지 않은 편이다.

책 짐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사업체 직원들이 책을 포장하고 운반하느라 폭염 속에서 수고했다. 

이사를 할 때가 되면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했었나 하는 회의감이 든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있었는지도 모르던 물건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언젠가 쓰겠지 하는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다 이사를 가야하는 때가 되자 미련 없이 버리는 것들이 있다.

또 이사 와서야 버리는 물건들도 있다. 

김국환의 ‘타타타’ 노래 가사처럼, 맨몸으로 와서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다가 결국 수의 한 벌로 마감하는 것이 이땅에서의 삶인데도 살면서 늘 부족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끝없는 소유욕과 관련하여 잠언서의 말씀이 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잠 30:15-16).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중에 사람의 마음이 있다. 어느 세계적 재벌에게 기자가 물었다.

“이렇게 많은 재산을 모으셨는데 이제 만족하신 지요. 아직도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재벌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한다. 

“지금 보다 더 많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가졌으면 둘을, 그리고 열을 소망한다. 

무소유의 삶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단순한 삶을 살아가도록 삶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어느 왕에게 전한 선지자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왕하 20:1). 

결국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때가 온다. 인생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는 말이다.

성경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조언한다(전 12:7). 

이삿짐을 싸면서, 그리고 이사 와서 짐을 다시 정리하면서 과연 나에게 이제 몇 번의 이사가 남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사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언젠가 이 땅에서의 이사하는 인생을 마치고, 영원한 정착지로 마지막 이사할 그때를 소망해 본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