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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91사마천의 사기를 말하다(7) 주나라 천하를 나누다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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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03  13: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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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의 무왕은 자신들의 신하들에게 논공행상을 하였다. 가장 큰 공을 세운 강태공에게는 지금의 산동성 동쪽 지역을 주었고 나라 이름을 제(薺)라고 하였는데 바로 산동성의 수도인 제남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또 자신의 동생인 주공에게는 곡부를 주었고 나라 이름을 노(魯)라고 하였다. 이후 공자의 고향이 바로 곡부였고 지금도 공자와 관련된 삼공(三孔)이 있다. 곡부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후손으로 공(孔)씨 성을 가진 이가 많다. 또한 공자의 후손들이 만든 “공자 요리”가 유명하며 산동성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의 요리가 유명해진 것은 이후 많은 왕들이 공자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발전하였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주나라의 무왕은 또 다른 형제들과 관리들에게 땅을 하사하고 각 지역의 제후로 임명했다. 이것이 주나라가 약해지면서 점차 독립하여 춘추시대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나라의 무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2년만에 병들어 죽게 되었고 그의 아들인 성왕이 왕위를 계승받았다. 

성왕이 당시 아직 어렸기 때문에 무왕의 동생이던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주공은 자신의 형에게도 충성스러웠고 왕이 된 조카를 보필했는데도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주공의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3년에 걸쳐 반란을 진압하였고 이후 주공은 나라가 안정이 되자 성왕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고 자신은 신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나라가 안정되면서 주나라의 왕은 천자(天子)의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세상을 천하(天下)라고 하였다. 주나라때 가장 큰 특징은 왕을 하늘의 아들인 천자로 부르고 자신의 통치 영역을 친척과 공신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분봉(分封)을 통해 봉건제도를 정착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보면 주나라를 제외한 왕조는 모두 중앙집권의 황제 중심체제였다.

그러나 주나라에서만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서양의 봉건제도와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서양의 봉건제도는 왕과 영주의 관계가 계약 관계였다. 유럽의 봉건제도는 일종의 계약에 따른 주종관계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장원, 즉 토지를 기초로 해서 영주와 농노가 있었고 그 위에는 국왕이 있었다.

국왕은 자신의 기사 혹은 신하에게 장원을 제공하고 대신 군역과 세금을 내는 계약관계였다. 만약 양측에서 어느 누군가가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을 경우 계약은 깨어지고 장원은 몰수되었다. 

한편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군신관계였다. 천자가 땅을 나누어 주면 이곳을 봉토라고 하고 제후가 독립적으로 이 지역을 통치하였고 그 봉토는 세습되었다.그리고 제후들은 주나라의 왕실을 종실로 삼아 수직적 권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주나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천하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천자와 그 주위의 권력자들, 그리고 제후와 제후가 다스리는 곳을 제외한 그 밖의 지역은 오랑캐가 사는 곳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천하의 끝을 네 곳으로 나누어 오랑캐 지역이라고 했는데 동서남북으로 그 이름을 달리했다. 

동쪽 지역은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동이는 동쪽에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 산다는 의미이고 산동성 동쪽과 한반도를 포함하고 있다. 서쪽 지역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창을 잘 사용한다고 해서 서융(西戎)이라고 불렀다.

남쪽은 무덥고 벌레도 많다는 의미로 이 지역의 사람들을 남만(南蠻)으로 불렀다. 그리고 북쪽에는 아주 흉포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북적(北狄)이라고 불렀다. 

주나라는 이렇게 봉건제도와 아울러 천하의 개념과 동서남북의 이민족을 구분하여 천자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중국과 중화사상이 시작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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