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운 탕왕에게는 뛰어난 지략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윤으로 손자병법에서도 등장한다. 손무의 손자병법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지지 않는다”라는 병법이 있다. 여기서 손자는 상나라가 흥기한 것은 이윤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윤은 탕왕을 만난 이후 그를 도와 적국의 동태를 파악하여 적시적소에 필요한 전략을 수립했다. 또한 탕왕에게 역대 제후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에 대한 교훈과 경험을 알려주었고 책략도 알려주었다. 그는 특히 ‘용간술(用間術)에 능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간첩을 잘 활용하여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한 다음 행동에 옮겼다. 

그는 하나라의 도읍에 간첩도 파견했지만 또 자신이 직접 3년 동안 5차례나 들어가 하나라의 정치, 군사 및 약점들을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라의 관리들을 만나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고 이간질을 일삼아 스스로 약해지도록 만들었다.

원래 상나라는 사방 70리의 아주 작은 땅만 있었고 하나라의 많은 속국중의 하나였다. 하나라가 부패하고 걸왕이 백성들을 탄압하여 민심이 이반된 사실을 파악한 후 탕왕은 그와 정반대의 정책을 시도했다. 탕왕은 이윤의 도움을 받아 덕으로 자신의 영토안에 있는 백성들을 다스렸고 하나라의 다른 속국들과 협력관계를 맺거나 혹은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여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탕왕은 초기에는 하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했으나 첫 번째 민심을 얻고 둘째 인재를 얻고 셋째 덕으로 주위를 다스리면서 그의 세력이 커져 열세를 우세로 전환시켰다. 이후 결전의 시기와 방향을 결정한 후 전격전을 통해 하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모든 역사에서 등장하는 흥망성쇠를 상나라도 이겨내지 못했다. 탕왕이 세운 상나라도 세월이 가면서 후손들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권력이 세습되거나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이기도 했다. 결국 고인물은 썩게 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역사의 반복이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을 역사에서는 주(紂)임금이라고 부른다. 주는 어렸을 때는 민첩하고 용감했다고 한다. 다만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모두를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이후 그는 술과 음식, 그리고 여자를 탐닉했다. 즉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진 것이다. 그는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해주었다. 이를 위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강요하고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이루게 하였다.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여기서 남녀가 나체로 돌아다니고 밤새도록 술을 먹고 유희를 즐겼다. 

왕의 압제에 고통받던 백성들과 제후들은 주임금과 상나라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중용한 인물들을 보면 비중이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그는 아부를 잘하고 이익만 밝히기에 급급했다. 또 한사람은 오래라고 했는데 이 관리는 남을 헐뜯기를 좋아했다. 결국 자신에게 감언이설로 아첨하는 인물들로만 주위를 채우고 있으니 나라가 기울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많은 독재국가나 심지어 민주 국가에서도 지도자가 자신의 말을 듣는 코드 인사를 하게되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주왕의 밑에 있던 서백은 백성들의 신망을 얻게 되어 그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는 산동성의 동쪽 바닷가에서 강태공을 만나 그의 조언을 듣고 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무왕은 군대를 일으켜 상나라의 주를 토벌했다.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 상나라의 주는 불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면서 상나라의 운명이 다했다. 

  주나라의 무왕은 주의 목을 베서 매달았고 그의 애첩 달기도 죽였다. 이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면서 천자가 되었고 중국의 천하라는 단어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