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황오제의 시기 중에서 오제의 시기는 중국인이 황하를 중심으로 정착 생활과 농경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삼황오제, 특히 오제의 경우는 중국의 최초의 왕조로 알려진 하(夏)나라의 전단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나라도 아직 그 실체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여러 역사문헌에 등장하고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본기에서 오제(五帝)로 그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사마천은 삼황오제 중에서 오제를 황제(黃帝), 전욱, 제곡, 요, 순을 들고 있다. 

  사마천은 오제본기에서 이 다섯명의 지도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삼황의 마지막인 신농씨의 뒤를 이은 황제이다. 그가 말하는 황제는 당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누런색’을 중요시 했고 그래서 흙을 상징하는 단어인 황제(黃帝)를 쓰고 있다. 

  이 5명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도교에서 말하는 오행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행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이며 상징물로는 동물들이 그 연계성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을 나타내는 수는 바닷가에 사는 거북이를 닮았고  또한 화는 붉은 봉황을 나타내는 주작(朱雀)이 있다고 말했다. 

  황제의 아들은 창의이고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오제 중에서 두 번째인 전욱이다. 사마천의 사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다양한 역사서에도 이 인물이 등장한다. 비록 신화이지만 산해경이라는 중국의 이야기에서 전욱은 노동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또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가 중이고 둘째는 려였는데 큰 아들 중은 하늘을 받치고 있고 려는 땅을 누르고 있으라 명했으며 이로 인해 하늘과 땅이 갈라져 서로의 왕래가 끊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전욱의 시기에 천지개벽이 만들어지고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세 번째 인물로 제곡이 등장한다. 제곡은 황제의 증손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신화는 각기의 역사서에 따라 조금은 혼란스럽고 중복되기도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황제, 전욱을 잇는 인물로 제곡을 들고 있다. 제곡은 30세가 되던 해에 전욱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지금 중국의 하남성 상구시에 그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하남성은 바로 중국의 황하가 흐르는 땅으로 중국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때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황하 문명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내용은 제곡이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에는 백성들이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단순히 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곡은 농사와 관련하여 체계적인 절기를 구분했다고 한다. 우리가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를 하는 등의 절기를 이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중국의 농경사회가 단순히 채집이나 수렵을 넘어서서 계절에 따른 본격적인 농경문화가 정착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는 105세까지 살면서 약 70년간 제위에 있었는데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백성들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하여 태평한 세월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의 묘는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하남성에 위치하고 있고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를 참배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요임금을 20살에 왕위에 올라 70년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그는 겨울에는 가죽 옷을 입고 여름에는 삼베 옷을 입었으며 겸손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여 백성들이 그를 숭배했다고 한다. 그의 시기에 드디어 도자기를 만들어 생활에 편리한 도구를 만드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오제 중에 마지막인 순임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요임금에게는 아들이 있었으나 그 능력이 부족하자 요 임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능력 있는 순을 발탁하여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순임금 시기에는 국가의 법적 제도를 마련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가 형벌을 제정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법률로 다스렸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삼황오제를 거치면서 중국의 황하 유역에 자그마한 부족 국가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공자도 일찍이 중국 역사에서 가장 태평한 시기를 이야기 할 때 요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삼황오제의 시기를 지나면서 중국은 점차 역사 시기에 접근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