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 중국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를 말하라면 단연코 상하이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상하이는 중국의 4개 직할시 중의 하나이며 중국의 경제, 금융, 무역, 해운의 중심으로 중국 최고의 도시이다. 또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시가 상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경을 정치 수도, 상하이를 경제 수도라고도 부른다. 이 상하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북경을 촌스럽다고 평가하기도 하며 자신들을 훨씬 더 세련되고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경에 청화대학과 북경대학이 있다면 상하이에는 복단대학과 교통대학이 있고 강남문화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상하이가 역사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그렇게 길지는 않다. 아편전쟁으로 영국에게 청나라가 패배한 후 체결한 ‘남경조약’에서 정식으로 서방에 개항하였으며 이후 그 주변의 사람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어 형성된 일종의 이민 도시이다. 

  그 주변의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산동성 등의 사람들이 상하이에서 기회를 잡으려고 이주해왔고 오랜 역사 속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문화에 이주민의 문화 등이 합쳐져서 상하이의 문화를 만들었다. 상하이 사람들은 물론 표준어를 할 줄 알지만 자기들간에는 상하이 사투리를 사용하여 외지인들이 쉽사리 정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하이에서의 사업은 반드시 상하이 협력자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 이전 한국 관광객들이 상하이에 가면 임시정부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만큼 한국에게도 상하이는 가까운 도시였다. 또한 세계 500대 기업들 중 많은 기업들의 아시아 본부가 상하이에 위치하고 있어 싱가포르나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상하이는 등소평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에 강택민을 발탁하였고 이후 그를 중심으로 포동지역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그 지역 이름이 포동신구가 되었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포동지구, 서쪽은 포서지구로 구분되었으며 중국 금융과 무역의 중심이 포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포동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동방명주탑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포동지역이 시작된다.

동방명주란 이름은 아마 이전의 상하이의 별명이 ‘동방의 파리’라는 것을 참고해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구 2500만명의 콧대 높은 상하이에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상하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의 최초 코로나 발생지인 무한에서의 코로나와 상하이의 코로나는 완전히 다른 개념과 충격을 중국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상하이시의 코로나는 포동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상하이시는 3월 말부터 포동지역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포서지역은 4월 1일부터 봉쇄가 시작되었다. 현재 중국은 ‘제로 코로나’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상하이의 코로나는 중국 경제와 많은 중국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에 대처하는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는 현재 시험대에 올라있다. 3월 한달 동안 약 3만명이 발생했는데 2500만명 중에 3만명은 우리가 60만명과 수십만명이 나온 것에 비하면 그다지 많지 않는 숫자일 수 있다. 

  포동지역에 있는 미국의 테슬라, 독일의 폭스 바겐, 상하이 자동차 등 많은 외국 기업들도 공장이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아우성이며 곳곳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왜 이렇게 강제적 봉쇄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올해 10월에 열릴 중국 공산당 대회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 공산당 대회가 시진핑의 제3기 집권을 공식화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코로나를 억제하거나 막지 못하면 시진핑의 집권 연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봉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우리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봉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고려가 결국 상하이 주민들을 고통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오히려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중국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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