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1970년 초에 발표된 유명한 동요 과수원 길의 노래 가사가 봄을 재촉하듯 귓가에 아른거린다.

이 노래가 한창 불려 질 무렵 갓 중학생이 된 나를 데리고 아버지께서는 매우 규모가 큰 평택 인근의 과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소작농에서 대농의 과업을 시작하신 거였다.

당시만 해도 평택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배의 주 산지였고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배 과수원들이 끝없이 이어지던 곳 이었다.

봄이면 배꽃이 만발하여 온 천지를 하얀 물결로 뒤 덮는 배꽃세상을 연출하곤 했다. 

이에 배를 상징하는 지명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배가 많이 난다하여 “이곡”이라 불리던 현재 이화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비전동 일대가 유난히 배 과수원들이 많았고, 원곡 방향으로 이어지는 신작로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과수원들이 연이어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부분의 과수원들이 건물들로 들어찬 도심으로 편입이 되어있다.  

그 끝자락에 우리 집 과수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 봄 통복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아파트 빌딩숲이 된 그 옛날 과수원 길을 발견하고 한참을 회상에 젖는다.

아득히 잊혀져가는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잠시 흘러 들어가 보았다.

학창시절 과수원은 나의 놀이터였고 유익한 성장과 학습의 공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전지 가지 줍기, 소독 분무기 밟기 줄잡기, 가을에 쓸 새끼꼬기, 나무로 된 과일상자 보수하기 등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했던 인생학습의 터전 이었고, 넓은 과수원 한 가운데서 빽빽이 들어선 배나무들을 향해  웅변 원고를 외워가며 연습을 하던 도전과 희망의 공간이기도 했다.

빌딩 숲 어딘가에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는 듯 한 그때의 내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써 보지만 세상의 바쁜 아우성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유난히 그 옛날의 과수원길이 그리운 오늘 아직도 남아있는 과수원 옆 소로 길들을 찾아 걸음을 옮겨 본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는,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그 옛날의 과수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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