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처남 병은 자동차 할부구입시 갑 자동차서비스 주식회사와 할부판매보증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갑 회사로부터 연대보증인을 세우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습니다. 병은 을에게 연대보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을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병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을의 처가 을 몰래 을의 인감도장을 빼내어 인감증명발급용 위임장을 위조하고 이를 이용하여 보증보험연대보증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을을 대리하여 갑 회사와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자금 사정이 악화된 병은 위 할부금을 납입하지 못하였고 갑 회사는 을에게 할부매매대금을 지급할 것을 독촉하였습니다. 을은 몰래 계약이 체결된 이런 경우까지도 을이 갚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인가요?

 

<해 설> 갚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리하여 체결한 계약의 효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대리인에게 본인을 대리할 권한(대리권)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도 남편이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처에게 남편을 대신하여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례에서 남편은 처에게 대리권을 준 사실이 없습니다.

 물론 대리권을 주지 않았더라도 일상가사의 범위라면 부부간에는 서로를 대리할 권한(일상가사대리권)이 있습니다. 처남의 자동차할부판매보증보험에 연대보증을 서주는 것은 일상가사의 범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본 사례의 연대보증계약은 결국 대리권이 없는 처가 남편을 대리하여 체결한 것으로서 소위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무권대리”에 해당하여 남편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민법 제130조). 그러나 대리권을 넘어선 대리행위를 하여 무권대리가 되는 경우라도 상대방이 무권대리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본인이 그 책임을 부담하여야 하는데 이것을 표현대리(表見代理, 민법 제126조)라고 합니다. 어떠한 때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것인지는 사안마다 다르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기준으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금전거래와 같은 경우는 대리인이 위임장이나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을 소지하고 있다면 상대방으로서는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와 같은 경우는 단순히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등기권리증 등 권리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소지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부동산의 소유자가 아닌 제3자로부터 근저당권을 취득하는 경우는 이례적인 것이므로 단순히 서류만 구비하고 있다고 하여 정당한 이유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소유자에게 담보제공의 의사가 있는지 여부 및 그 제3자가 담보제공의 위임을 받았는지 여부를 소유자에게 확인하여 보아야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94다34425 판결).

위 사례의 경우 보증을 서면서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처는 남편의 인감도장을 손쉽게 취득할 수 있으며 이를 가지고 위임장 등을 위조하여 인감증명서를 쉽게 발급받을 수 있으므로 계약의 상대방으로서는 처가 남편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에게 남편을 대리할 권한이 있다고 쉽사리 믿어서는 안되고, 남편에게 확인해 보는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갑 회사가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의 소지만으로 별다른 확인 조치없이 처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었다면 “정당한 이유”가 된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98다18988 판결). 따라서 처의 대리행위는 표현대리가 아닌 단순한 무권대리행위로 무효라고 할 것이므로 남편은 할부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갑 회사는 무권대리행위를 한 처에게 할부매매대금의 지급을 구하거나 손해를 배상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35조 제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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