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러시아가 불법적인 침략을 도발하여 함락의 위기에 빠진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도자와 함께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나 워낙 군사력의 차이가 압도적이어서 그 함락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 위치하고 있고 러시아의 동쪽과 남쪽에 국경을 가지고 있으며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몰도바와 루마니아와는 서쪽에 인접해있다. 최근 러시아에게 군사기지를 내준 벨라루스는 북쪽과 국경을 하고 있고 남쪽에는 흑해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처음부터 국가를 형성한 것은 아니었고 8세기경에 바이킹의 후손들이 지금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키예프에 공국을 수립했다. 이 공국은 훗날 발전하여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우크라이나로 발전해갔다. 

  키예프 공국은 동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정교회를 중심으로 종교가 발전되었고 또한 흑해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무역에 종사하여 많은 부를 이루었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난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  

  키예프를 중심으로 다양한 러시아의 공국들이 독립하여 유지되고 있었고 이들은 넓은 평원과 양질의 토지를 갖추고 있어 농업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반면 넓은 평원에 있었기 때문에 산악 국가에 비해 유목민들의 침략에는 쉽게 노출되는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역사에서 비극은 몽골과의 조우에서 시작된다. 징기스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몽골은 동쪽과 서쪽을 가리지 않고 침략 전쟁을 시작한다. 몽골은 우선 자신을 괴롭히던 서쪽 지역을 향해 침략전쟁을 전개했다.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침략했는데 우선 서하를 멸망시켰고 그 다음에는 자신들의 사신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1219년 호라즘 왕국을 공격했다. 이때 전쟁에서 패한 무함마드 2세는 서쪽으로 달아났고 당시 최대의 장수였던 수부타이를 시켜 이를 뒤쫓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지역들이 몽골에게 함락되었고 몽골군은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수부타이의 몽골군은 이란의 도시들을 점령했고 아르메니아를 침략했으며 조지아까지 손에 넣었다. 몽골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쪽으로 코카서스 산맥을 건너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고 흑해지역에 다다랐다. 

  키예프 공국을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 공국들은 몽골이 공격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들에게 칼가강에서 대항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마전에 능한 몽골을 당해낼 수 없었고 키에프의 대공과 많은 귀족들은 항복하였으나 몽골군에게 학살당했다. 

  이렇게 서쪽 지역을 평정한 몽골은 다시 동쪽으로 눈을 돌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또한 몽골은 자신의 사신이 살해되었다는 핑계로 고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려는 1231년 1차 공격을 시작으로 1259년까지 무려 9차례의 공격을 막아냈다. 당시 몽골에 대항하여 이토록 끈질기게 오랫동안 저항한 나라는 고려밖에 없었다. 결국 고려의 독립을 인정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몽골과 화친을 하였다. 

  한편 몽골은 1236년 다시금 서쪽을 향해 침략을 개시하여 불가르, 쿠만, 킵차크족을 항복시켜 몽골군에 편입시켰다. 다음해인 1237년 러시아 공국의 하나인 라쟌 공국을 공격하여 공국의 모든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어서 블라디미르와 수즈달 공국을 공격하여 역시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살해했다. 드디어 1240년 당시 러시아 공국중 가장 중심이었던 키예프 공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키예프를 지키려는 군인과 시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몽골을 막아내지 못했다. 몽골군은 당시 키예프 성내의 5만명 중 약 4만 8천명을 살해했고 모두를 불태워 키예프 공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러시아는 몽골제국에 편입되었다. 

  오랜 역사의 수난 속에 키예프를 중심으로 새롭게 국가를 회복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또 다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힘없는 국가의 아픔을 당하고 있는 것이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의 틈에 끼인 우리에게도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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