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올림픽에서 한국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뭔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한국과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서로의 비방전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고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도 이에 편승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에 있는 중국 대사관이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에 대해 평가를 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하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올림픽의 본질은 사라지고 양국의 국민들간에 서로에 대한 비하와 비방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간의 관계가 최악의 단계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때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적도 있었고 한국의 화장품이 세계 최고의 화장품이고 가장 값진 선물로 받아들인 적도 있었다. 한중 관계는 사드 이후 한한령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문화가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한국의 화장품도 중국의 애국주의의 강조로 점차 그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을 대상으로 화장품을 팔던 아모레, LG 등의 주식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와 관련하여서도 한국과 중국의 갈등은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진취적이며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고구려의 역사를 둘러싸고 중국의 역사왜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원래 중국의 역사에서 한족(漢族)의 시작은 황하의 중하류에 있는 낙양과 정주였으며 이 곳을 중원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중국의 수많은 왕조들 진나라와 한나라, 당나라가 도읍을 서안(西安)에 두었고 남쪽 지역만 자신들의 통치 영역으로 삼고 있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유목민족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에는 흉노족이 침입하여 조공을 바쳐야 했고 당나라 시기에는 토번이라는 티베트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는 굴욕도 맛보아야 했다. 

  또한 당나라 다음으로 세워진 송나라 시기에는 여진족과 거란족이 공격해 금나라와 요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그 굴욕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징기스칸의 후예에게 결국 송나라는 멸망하였고 원나라가 중국을 정복하고 통치했다. 

  원나라 시기에 수도를 지금의 북경에 정하고 대도라고 했으며 이때부터 중국의 역사에서 북경이 수도가 되었다. 원나라 이전의 송나라 시기에는 개봉(開封)과 항주(杭州)가 수도였다. 원나라 이후 명나라도 원래는 남경을 수도로 삼았으나 황실 쿠데타를 거쳐 북경이 수도가 되었다. 명나라 역시 유목민족인 만주족에게 또 정복을 당했고 이때 세워진 것이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로 수도를 북경으로 하였다.  

  중국의 역사에서 한족이 스스로 영토를 넓혔다기 보다는 외부 유목민족에게 정복을 당하여 그 영토가 확장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청나라 멸망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을 겪고 1949년에 수립된 정부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온 중국은 영토와 인접국가의 침략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현재의 영토를 역사적 관점에서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가두어 두려고 한다. 

  바로 우리와 관련된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것이다. 중국의 동북지역은 이전에 고구려와 발해가 있던 곳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은 이 부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아전인수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즉 중국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동북지역이 원래부터 중국의 영토라는 논리를 세우기 시작했고 학술대회등에서 이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지역 뿐만 아니라 자신과 인접하고 있는 많은 지역 혹은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영토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결국 주변 국가들로부터 중국을 혐오하거나 반대하는 여론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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