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다. 가끔 이 시를 음미해 본다. 연탄재는 겨울철 빙판이 된 언덕길에 미끄럼을 방지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겨울철 난방 도구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연탄은 나에게 여러 추억들과 함께 기억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 연탄이나 연탄재를 알까? 어디서 들어서 단어와 의미는 알 테지만, 실제 그것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추억거리가 아이들에겐 그냥 과거 역사일 뿐이다. 웃다리문화촌에 전시된 연탄난로를 구경하는 것과 같은 느낌정도랄까.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주 시내 어느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직 주인집이 이사를 하지 못해 그 아래 작은 집에 임시로 머물렀을 때였다. 온가족이 한 방에서 자다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한 밤중 누군가 먼저 깨어 온 가족을 급히 밖으로 나오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 큰 불행을 당했을 것이다.  

1991년 겨울 필자는 서울에 직장을 구해 잠시 답십리의 어느 싼 월세 방을 얻어 자취를 했었다. 길가에서 문을 열면 통로 겸 부엌이 있고 작은 방하나가 딸려 있었다.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했는데, 연탄아궁이가 있는 벽에 금이 가있었다. 어쩐지 월세가 너무 싸다 싶었다. 가스 배출기를 새로 사서 달고 매일 저녁 퇴근을 하면 번개탄으로 연탄을 피우고 배출기를 최대한 강하게 틀었다. 

저녁 잘 때마다 내일 아침 무사히 깨어나기를 그토록 절실하게 기도한 적도 별로 없을 것이다. 너무 가스 배출기를 세게 틀어서였을까? 아침이 되면 연탄은 벌써 하얀 빛깔을 띠며 온기를 잔잔히 머금고 있었다. 나에게 연탄은 이렇게 많은 추억거리와 함께 기억된다. 

지난 주초 가족들과 한국영화 ‘킹메이커’를 보았다. 40대 이상에게는 직접 체감하며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 ‘3김 시대’로 불리던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내 아들들에게 이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역사였다.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역사 교과서를 통해 조금 안단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이렇게 똑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또 누군가에겐 역사로 다가온다.  

내 아버지는 어떤 시대를 사셨을까? 지난 설 명절 부모님 댁을 찾았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설 명절 특집으로 옛날 가요가 방송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분명 추억이 담긴 노래였을 텐데, 나에게는 그저 흘러간 옛 노래였다. 

저 노래가 유행했을 때 부모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은 추억과 역사를 오가며 서로가 만난다. 

앞으로 더 시간이 흘렀을 때 지금의 시간들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고, 또 시간이 흐르면 역사의 편린으로 박제될 것이다. 지금도 추억과 역사 사이 어딘가에서 나와 내 자녀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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