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밥이 목이 메다’의 속담이 있다.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슬픈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새해 초입부터 몸살을 앓았다.

아무 것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입맛을 잃고 누워만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고 모든 것이 부질없이 여겨졌다. 

사계절 중 겨울은 마음이 가장 추운 계절이다.

어디 낙엽만이 떠나갔겠는가, 바람 골목에 서 있는 날이면 중년을 보내는 나도 엄마 생각이 난다.

이제는 함께 했던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어쩌다 엄마의 요리를 흉내 내어 주방에서 국간을 보기라도 하면 추억이 진해진다. 

유리창에 두툼한 꽃문양 성에가 낀 단칸방 아침은 부엌과 연결된 작은 쪽문을 통해 밥과 찬을 나르기에 분주하다.

김장김치와 동치미에 한 냄비 푹 끓인 말린 무청 시래기국이 찬의 전부지만 먹성이 좋은 우리들은 어느새 바닥난 밥그릇을 벅벅 긁어대었다.

엄마는 언제나 한솥단지 음식을 만들어 온가족을 먹이셨는데 보기에 양은 많아보여도 늘 아쉬운 한 수저는 배부른 투정을 하는 오늘의 나를 깨운다.

갱시기죽은 유년을 키우고 지배한 엄마의 독보적 레시피이다. 원래 갱죽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갱시기죽이라 정착해 불리고 있다.

이 요리 재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신김치는 기본이고 먹다 남은 찬밥, 국수, 콩나물, 밀가루를 반죽해 뚝뚝 떠 넣어 푹푹 끓이면 그만이다. 

기억 너머로 전송한 추억의 파일을 여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흐른다.

요즘은 음식을 많이 할 일이 거의 없다.

음식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맛보는 것인데 나의 식단은 아주 단출하다. 끓이거나 볶거나 지지거나 굽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느리게 뜸을 들여 만드는 일도 사라졌다.

무얼 해 먹는 일이 귀찮아 간편식으로 해결하고 일터로 나간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침은 굶거나 시리얼과 우유나 빵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독거는 혼자 삶을 말한다.

타지에 있는 아이들은 자주보기 힘드니 자식이나 부모는 스스로 독거 아닌 독거로 단독 생활이 자연스럽다.

소탈한 토속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한 번씩 음식을 차려 가까운 친지들과 밥을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우리의 이야기꽃에 함박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는 책의 작가인 주철환 문화콘텐츠교수의 40여 년간 고수해온 좌우명이다. 그렇게 희망으로 독거를 풀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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