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흥 논설위원
▲문석흥 논설위원
전철 안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가던 할머니가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데, 옆에서 듣자하니 집에 가족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이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나를 보고 휴대전화에 번호 좀 눌러 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이 할머니가 눈이 어두워서 숫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가 하고 전화기를 받아서 할머니가 불러주는 1번을 눌러서 드렸다. 아마 그 1번은 집 단축번호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가족 누군가에게 내가 다 왔으니 차를 가지고 역으로 나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는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끝낸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눈이 많이 어두우신가 봐요?” 라고 했더니 할머니 대답은, “내가 눈이 어두운 게 아니라 숫자도 잘 모르고 손도 떨리고 전화기도 사용할 줄 몰라서 겨우 오는 전화만 받고 전화를 할 때면 지금처럼 옆 사람한테 부탁해서 1번으로 만 해요. 내가 밖에 나오면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서 인지 이 휴대전화를 사주어서 겨우 집에 아이들하고만 전화를 통화 하지요.”라고 하신다.

아직도 송·수화기가 따로 있는 유선 전화기가 있기는 하지만, 손안에 넣고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등장하는 바람에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휴대전화도 이젠 스마트폰으로 바뀌더니 그것도 수시로 새 기종이 나와 더욱 신비로운 세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그 속에 담겨진 프로그램들이 너무 다양해져서 음성, 문자, 영상, 등 통신은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손끝을 통해 접하며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편리한 도구가 되었다.

요즘은 각종 가전제품들만 보아도 사람이 할 일을 스위치만 누르면 알아서 제 기능을 다하니 얼마나 편리 한가. 농기구들만 보아도 ‘이앙기’가 혼자서 다 모를 심고 가을에 벼를 벨 때는 ‘콤바인’이 혼자서 벼를 다 베고 나락까지 떨어 자루에 담지 않는가. 다만, 사람은 운전자 혼자 앉아 운전과 기기조작만 하면 된다.

또 은행에 가면 자동 입출금기가 있어서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넣고 필요한 만큼 현금인출도 하고 입금도 하고 이채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계다. 또 컴퓨터가 있어서 문서도 작성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앉아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토록 사람이 손끝으로 이런 기계나 기기들을 작동만 시키면 사람의 의도대로 충직한 종처럼 다 해주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그러다 보니 사람과 기계와는 점점 밀접해지고 사람과 사람끼리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예전에는 다리미로 옷을 다려도 반드시 두 사람이 마주 잡아당겨 가며 다려야 했고 맷돌질이나 다듬이질, 절구질을 해도 두 사람이 서로 조율하며 해야 했다. 논두렁을 만들기 위한 가래질을 할 때도 세 사람이 해야 했다.

이와 같이 요즘처럼 기계화 자동화가 되기 이전에는 가사일이건 농사일이건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해야 했기에 그런 속에서 서로 간에 소통이 되고 교감이 되었다. 근래에 와서 생활 구조가가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해 가다 보니 인력으로 살아왔던 노인세대들은 새 시대의 문물에 쉽게 적응하기가 어렵고 그것을 다 익히기에는 신체기능이 이미 둔화되어 한계점을 느낀다.

이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앞서 가는 시대에 뒤처져 새 문물의 편리함을 공유하지 못한 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바보처럼 살아갈 수밖에…, 무엇보다도 각종 기기들이 사람이 할 일을 다 하니 사람과 기기 관계는 밀접해져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는 점점 소원해져 가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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