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겨울 햇볕이 방에 가득하다. 나의 뇌가 생각하는 대로 내 방은 하루 이틀 모습을 바꾼다. 

시간과 함께 골동품처럼 오래된 가구가 놓여 있다. 노란색 옷장은 오래전 동생에게 받은 박달나무장인데 세월과 함께 은은히 누런빛이 난다. 은둔의 모서리에서 누에처럼 무슨 혼자만의 집을 짓는 것이다. 

겨울, 잃음과 응축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겨울의 고요함보다 더 잠 못들게 하는 것은 시간의 보복이다. 그때그때 사람으로서 행동하지 못하였던 시원치 않음이 괴로울 때가 있다. 오늘은 해와 달이 주는 시간을 겸손하게 받아 쓴다.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광목 이불 홑청을 빨아 말려 엄마와 이불을 깁던 방,  옥색 재봉틀이 인고의 세월 동안 당신을 지켰던 방, 아이들이 울고, 장난감들이 늘상 어질러져 있던 방이 지나갔다. 

시인 친구의 방을 보았다.  소담한 한옥의 뜰을 연상케 하는 카페 같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긴 노동을 마치고 노고를 스스로 잠재우는 강변에 지은 집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썼다.  자기만의 방에는 주인보다 더 생동생하니 온기가 흐른다. 

나의 방은 하늘과 잇닿아 있다. 지붕이 열렸다 닫혔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달과 북두칠성이 머리맡에 있다는 것을 안다. 역사와 수고의 음률이 저장된 방에서 걱정일랑 내려놓고 뒹굴거린다.

생존 세상은 싸움과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고, 이기적인 험담과 한숨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사랑과 소외 속 그 사이에서 내 방은 노래를 부른다. 지치지 않고 노래한다. 입술들,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사람답다.  지금은 겨울 방, 여기서 ‘이유없이 기쁘고 풍성한’ 시인의 노래를 들었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재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 김수영 시인의‘그 방을 생각하며’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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