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호 씨가 일찍 마라톤을 시작 안한 것은 한국 육상계의 크나큰 손실이다” 1990년대 이봉주, 황영조와 함께 한국 마라톤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완기 전국가대표는 박상호(64) 씨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마라톤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높이 산 것이다. 지난 4월 제9회 예산 벚꽃 전국마라톤대회에서 입문 5년 만에 풀코스 100회 완주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한 평택마라톤클 럽 박상호 씨를 만나 보았다. (편집자 주)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됩니다.
특히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결승점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계속 달립니다.
내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그러나 마라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는 1등이 딱 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라톤에서는 기록이 가장 빠른 사람만 1등이 될 수 있지만 인생에서는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습니다.
-김영식의 10미터만 더 뛰어 봐’중에서-

▲마라톤은 인생의 스승

 
 

박상호 씨는 마라톤을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의 스승이라 정의 했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일깨워주고 힘든 고비마다 이겨 낼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는 그는 마라톤을 얘기할 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힘이 넘쳐 보였다. 그 역시 마라톤에 입문한 계기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0대 후반 당뇨와 고혈압 증상이 찾아왔고, 의사는 규칙적인 운동을 권유했다. 처음에 시도한 운동은 걷기였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마라톤을 시작했고 그때가 2008년 1월, 그의 나이 59세였다. “처음부터 재미를 느꼈습니다. 매일 아침 10km 달리기를 하는데 당뇨수치와 협압수치가 정상으로 유지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었습니다” 마라톤 에 재미를 느끼던 중 입문 2개월 만에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는 2008년 3월 2008서울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4시간 17분 58초의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무사 완주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전국의 마라톤대회를 찾아다니며 하프코스, 풀코스를 가리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한마디로 마라톤에 미친 시기 였죠. 보통 대회가 주말에 열리는데 한번은 토요일에 서울대회를 마치고, 운전하고 전남 고흥으로 내려가 일요일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죠” 이정도면 건강을 찾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강철체력을 만들어 준 셈이다.

만 5년 동안 한여름, 한겨울 마라톤대회가 열리지 않는 때를 제외하곤 매주 대회에 출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러기에 지난 4월 마라톤 풀코스 100회 완주라는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황영조 감독이 페이스메이커 자청

박상호 씨의 마라톤 전성기는 2011년부터다. 2011스켈리도전 국마라톤대회, 제12회 이천도자 기마라톤대회, 2011청주무심천 마라톤대회, 2012코리아골드마 라톤대회, 제8회 예산벚꽃전국마라톤대회, 제9회 서울시민마라톤 대회, 2012전마협대전마라톤대회 등에서 60대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러면서 기록도 점차 향상되어 갔다. 그의 최고 기록은 2012년 동아 마라톤대회에서 달성한 3시간 8 분 57초다. 무수한 대회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출전하자 다양한 인맥도 형성되어 갔다. 특히,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 진흥공단 감독과의 재미있는 일화를 공개했다.

“미사리에서 열린 한강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을 때 일입니다. 황 감독과는 대회에서 자주 만나 안면이 있었지요. 그때 제 와이프와 동반 출전했는데 황 감독이 자청해서 5km까지 페이스메이커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전국 각지 마라톤대회를 다니다보면 아는 사람이 많아 져 경기후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마라톤의 또 다른 매력이리라.

박상호씨는 지난 5월초 101회 완주를 달성했다. 지난 25일에는 중국 단동에서 열리는 압록강마 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첫 번째 해외원정경기이고 부부가 동시 출전했다. 그의 기록갱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브쓰리, 그리고 보스톤마라톤대회

101회 완주동안 한 번도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었다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에 대해서 물어봤다.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가 기억에 남네요. 지역 특성상 고개가 많아 험난한 코스였지요. 중반 이후 다리에 쥐가 나서 무척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으로 기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그는 쥐가 난 다리를 부여잡고 3시간 45분의 기록으로 끝까지 경기를 완주했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박상호 씨의 든든한 후원자는 아내 방청자 씨(61세)다. 처음엔 남편의 건강이 염려돼 몸에 좋은 한약이며 인삼우유 등을 만들어 주다가 현재는 마라톤대회에 함께 출전하고 있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애정이 깊어졌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마라톤에 미친 남자로 소개하는 그의 향후계획이 궁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마라톤 인생에 남은 목표가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내년 안에 서브쓰리(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 완주하는 것)를 달성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70세에 보스톤마 라톤대회에 출전하는 것입니다”

평택마라톤클럽 회원인 박상호 씨는 동호회 홍보도 잊지 않았다. 평택시민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처음 마음먹은 그대로 열심히 운동하다 보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거라며 기자에게도 적극 추천했다.

박상호 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했다. 과연 그가 현역 마라톤 선수생활을 했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과연 한국 육상계의 판도가 크게 요동쳤을까. 지나온 역사에 가정은 없겠지만 상상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질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든 마라톤이든 1등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듯이 마라톤도 달리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그의 외침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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