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내 및 대외 정책을 실시하며 이것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등소평은 중국의 국가적 이익을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대외정책을 결정하였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교류에 있어서 “중국은 절대로 대립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겠다”고 천명하면서 국제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스스로 중국의 외교정책을 자주독립과 평화적 외교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정책의 근거에는 미국이나 소련과의 이념적인 대립보다는 경제적인 발전이라는 실리적인 태도가 있었다. 특히 경제발전에 핵심적인 개방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립이나 모순보다는 협력과 화해, 그리고 평화적 국제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간주하였다. 

등소평의 뒤를 이은 강택민도 평화와 발전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주제이며 세계의 권력구조가 변화하여 다극화의 추세가 강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은 중국 내부의 모순을 격화시켰고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 등을 겪으면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천안문 민주화 운동과 함께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이 중국의 공산당 지배를 전복시키려는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방은 중국이 비록 개혁과 개방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공산주의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관계는 ‘중국위협론’이라는 단어를 선보이게 되었다. 즉 이전에 나폴레옹이 “중국을 잠에서 깨지 않도록 해라”라고 한 말처럼 서방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강택민은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세계 질서이며 패권주의와 강권주의로 인해 국제질서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간의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국제질서는 다시금 재편되어야 하고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지금 시진핑의 중국과 미국 및 서방세계와의 갈등은 사실 강택민 시기에 시작되었고 후진타오 시기에 보다 긴장도가 높아졌고 시진핑 시기에 이것이 현실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강택민 시기의 중국은 아직 이러한 긴장도가 높지 않았고 대립보다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협력적 대외정책이 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권력을 잡은 21세기에는 중국의 새로운 외교적 틀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중국의 강대국화를 위한 전면적인 외교를 실시하였다. 

후진타오는 주변국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관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국가와 협력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경제적 협력의 수준을 넘는 군사적 협력관계까지 그 수준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후진타오의 중국은 2003년에 자신의 외교정책을 ‘평화적 굴기’라고 명명했다. ‘굴기’라는 한자어는 “떨쳐 일어나다” 혹은 기존의 어떤 틀에서 “우뚝 서다”라는 의미로 강대국화를 의미한다. 

미국 역시 중국을 인권과 종교,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국가로 간주하고 있고 아시아 지역의 세력변화와 지역 안전에 있어서 잠재적 위협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국방보고서에서 “중국과 같은 부상하는 강대국이 미국과 다른 노선을 취하는 것에 대응하여 봉쇄전략이 필요하다” 라고 지적하였다.

후진타오 시기의 평화적 굴기라는 단어가 긴장을 고조 시킨다는 것을 인식하고 평화적 발전이라는 용어로 수정하였으나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의구심은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시진핑이 정권을 잡으면서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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