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찬바람이 손등을 에이듯 불고 지나가나 싶더니 마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귓전을 할퀴고 사라지자 수 천 개의 낙엽들이 넓은 신작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서로 경쟁하듯 뒤돌아 볼 여유도 감춘채로 일목요연하게 내닫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누가 일등을 위해 달린 다 기 보다는 일단은 뛰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달리고 있음이 역력했다. 바람에 떠밀린다는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제 스스로 달려가고 있음이 분명한 하나의 마라톤 경기였다. 

추운 겨울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야겠다는 낙엽들의 달음박질이 시작된 것이었다. 앞 서 거니 뒤 서 거니도 중요하지 않았다.

옆자리를 탐해 진로를 막지도 않는다. 크든 작든 간에 바람이 멈추기 전엔 낙오란 없을 것이다. 불연 듯 그들의 종착지가 어디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의 영향이 끝나면 멈춰지는 그곳이 곧 종착지 일 터이지만 그곳이 어디 일까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러는 황량한 길 한 복판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심히 굴곡이진 구렁텅이가 그 곳 일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아주 되똑한 길 언저리 이거나 포근한 인가 울타리 옆 이거나 아마도 제 각각 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삶을 위해 사정없이 달려온 후 목적지처럼 다다른 곳과 어쩌면 매우 흡사하다. 바람에 밀려 쫓기 듯 달려온 지난날의 일상들이 멈춘 곳이 과연 바람이 데려다 준 이곳 이라면 우린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주어진 목적지에 다 다를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의지였든지 아니면 바람의 역할이었던지 개의치 않고 받아 드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 먹어본다.

어쩌면 바람의 방향을 따라 일제히 달려가는 저 낙엽들의 겨울 달리기가 답이다. 뒤 돌아 보지 않고 정진하던 지난날들의 질주가 오늘의 나를 머물게 할 계획 이었다는 것을 저 낙엽무리들의 마라톤 경기를 보면서 더욱 실감한다. 이제 내가 멈추어진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자고 깨닫게 된다.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든 이곳이 나의 정점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세상 밖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아직도 줄달음질치고 있는 세상의 무리들이 바로 보인다. 그대들 어디로 가시는가? 거기에 도착 하거든 안부나 전해 주시 게나! 어디든 내 설 곳을 찾았다고 당당하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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