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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65다시보는 중국 역사 (117) 후진타오의 등장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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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7  11: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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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는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의 뒤를 잇는 제4세대 지도자이다. 그의 조상은 원래 황산이 있는 안휘성 출신으로 장사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조상은 강소성까지 진출하여 차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였고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아버지는 당시 엘리트로 학교 교사를 지냈고 어머니 역시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였다. 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후진타오였다. 

후진타오는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취미를 가져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1959년 고등학교 졸업 후 중국 최고의 대학인 청화대학교 수리학과에 입학하였고 이때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였다. 

그는 이미 대학교 시절에 활발한 학교 교내 활동을 하였고 무용을 하였으며 수리학과의 정치 보도원을 하였다. 1964년 4월 정식으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가 공산당에 가입한 해는 바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5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국경절 행진에 청화대학을 대표해서 참가하였다. 

또한 그는 ‘생동감 있는 모택동 사상의 노래 -  동방홍’이라는 문장을 중국의 ‘인민일보’에 발표하면서 그의 정치적 역정이 시작되었다. 그는 졸업후 1969년에서 1974년까지 수리부에서 근무했고 1974년에 감숙성 건설관리위원회 부처장과 공산당 부주임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당시 중국공산당 감숙성 서기이고 훗날 정치국 위원이된 송평과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982년 공산주의 청년단에 들어가 감숙성 서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빠르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북경에 불려가 공산주의 청년단 중앙서기처서기가 되었으며 전국 청년연맹의 주석이 되었다. 

1984년에는 중국공산주의 청년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가 되었고 중국 공산당 중앙후보위원까지 올라갔다. 마침 등소평은 간부들을 보다 젊은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고 선언하였고 이때 그의 나이 40대로 기회가 다가왔다. 

그는 중국 귀주성의 서기가 되었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임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업무만 충실히 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던 귀주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하였고 약 345만명의 절대빈곤층을 해결하여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 받았다. 후진타오는 동시에 대규모의 기구개혁을 단행하여 성내의 불필요한 조직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부서책임제를 실시하였다. 

1987년 중국 공산당 13차 전당대회에서 그는 정식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그가 귀주에 재임하던 기간에 귀주대학에서 학생간의 충돌사건이 발생하고 데모가 있었으나 후진타오는 매일 회의를 개최하고 데모 주동 학생들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또 한번 중앙 원로들의 눈에 들게 되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 중국 공산당 중앙은 더 복잡한 티베트 지역의 서기로 그를 임명했다. 그가 임명된지 얼마되지 않아 티벳에서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지역은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는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해 과감하게 행동을 하였으며 1990년 5월 1일에 약 1년만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후진타오의 귀주성과 티베트 지역에서의 업무 능력은 등소평과 당시 중국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던 원로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들은 후진타오가 당과 국가에 충성하고 있으며 능력이 탁월하다고 인정했다. 이 과정속에서 후진타오는 새로운 지도자의 후보군에 발탁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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