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비중이 사는 일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본적인 그것을 누구나 온전히 누리면서 사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모처럼 지인의 행사를 축하하는 모임이 있어 전철을 탔다. 역 광장에 들어서면서 어지럽다. 나도 오두막 체질인가. 목적지를 가는 내내 기둥에 기대어 갔다. 침묵이 가득 찬 빈 들녘이 지나고 세상을 이루는 격차 없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유리창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은 ‘덧없다와 있다’의 간극에 당황하지 않는 걸 보니 나도 여유 있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저 수목들의 빈 가지처럼, 허공에 귀를 열어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이 삶을 사랑하며 사는 일의 내공임을 깨닫는다.
밖의 풍경이 잠시 긍정의 노선이었다면 전철 안 또 다른 풍경과 마주한다. 몸이 매우 불편한 사람이 작은 가방에서 꺼낸 물건을 어눌한 말로 이야기 할 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생계가 사는 일의 전부인 그를 외면하기 힘들어 지갑을 열었다. 세상을 향해 삶을 피력하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만추와 겨울의 초입, 빠르고 정신없이 살아 온 우리에게 조금 느리게 사는 일도 중요하다. 저 잎 다 지고 가지만 검게 남은 나무는 오랜만에 텅 빈 휴식을 가질 것이다. 들과 산, 골목과 길거리의 바람은 매섭고 황량하여 쓸쓸해지고 외로운 마음 일어날 시간이다.
지금이 마음 곳간에 행복이란 물감으로 물들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 번쯤은 허허해져보라. 그 공간은 무한하여 차고 넘치도록 행복감정을 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